피해자 대다수 20·30대…"은닉 재산 하루빨리 몰수해야"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부산에서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원룸 건물들을 사들이고 210명의 세입자들에게 전세금 164억원 상당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여성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박주영 판사)은 23일 오전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50대·여)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법정에는 A씨로부터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30여 명이 찾아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20년부터 올해 1월까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담보 채무 현황과 실제 임대차 현황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임대차 보증금 반환은 문제없다는 식으로 속여 피해자 210명에게 164억원 상당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수년간 자기 자본을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무를 부담하거나 담보대출을 승계하는 이른바 '갭투자' 수법으로 원룸 건물 여러 채를 매입해 왔다.
재판에서 앞서 A씨가 자신의 인적사항을 말하며 광안대교가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답하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사기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박 판사는 피해자들을 위해 공판 진행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배상신청인에 대해 충분히 진술할 기회를 드리겠다. 재판에서 진술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본인의 상황들을 적어내시면 제가 빼놓지 않고 다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한 피해자의 변호사는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그는 "이 사건은 개인이 단독으로 할 수 없는 사건으로 보이고, 아마 조직적 공범이 있을 것"이라며 "범죄집단 조직·가입·활동 혐의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사기)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개별 금액 문제가 있고, 추가적인 피해 호소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추후에 공소장 변경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재판이 열리기 1시간 전 피해자들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A씨에 대한 엄중 처벌과 은닉재산 환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하루빨리 A씨가 은닉한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피해자들은 A씨가 자신이 소유한 원룸 건물들에 '구속된 이후 자신이 실형을 살면 보증금을 한 푼도 줄 수 없다. 형사 합의를 해주면 우선 변제해주겠다'는 자필 협박문이 게재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은 원룸 건물이 관리되지 않아 소방·엘리베이터 등 안전 문제를 겪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A씨 대신 건물을 관리하며 버티고 있다.
또 몇몇 피해자들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 무이자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정부 기관과 은행이 책임을 떠넘기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 정모씨는 "정부에서 승인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중개인을 통해 전세매물을 중개 받았으며, 정부와 은행, 보증기관에서 해당 전세매물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고, 승인돼 대출받아 살게 됐다"며 "하지만 전세 사기 피해의 책임은 오롯이 세입자들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피해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하다"고 호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이동균 변호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A씨의 범죄수익을 박탈하고 자산을 동결해 범죄수익의 소비·은닉을 막는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 이후에 더 많이 발생할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속히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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