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산하 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단약자 "재활센터에서의 '소속감·관계' 큰 도움"
"중독자들, 소외감 커…갈 곳 있다는 것 중요해"
[서울=뉴시스]황재희 기자 = “마약 중독자들이 갈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독자들은 사실 외로움도 많이 타고 가족에게조차 소외감을 느끼는데,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됩니다.”
올해 28살인 단약자(마약 중단자) 이은혁(가명, 남)씨는 마약에 중독됐다 단약한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중앙마약중독재활센터(이하 재활센터)를 통해서다. 지금은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재활센터에서 관련 교육을 듣고 단약자들을 돕는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6일 재활센터에서 만난 이씨는 재활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단약에 성공하게 된 스토리를 들려줬다. 4년간 마약에 중독됐던 자신이 거짓말처럼 3개월 간의 재활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단약하게 된 사연을.
◆두통에서 시작된 의료용마약류…4년간 중독 상태로
이씨의 마약 중독은 처음에는 끔찍한 두통에서 시작됐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두통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지속됐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중에 파는 아세트아미노펜 등과 같은 진통제를 달고 살았으나 단기간에만 효과가 있었고 두통은 계속됐다.
그렇게 두통이 계속되자 우울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씨는 “그렇게 우울증이 오기 시작하면서 20대 초반에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갔다”며 “두통은 안되더라도 우울감이라도 잡고자 갔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정말 우울감만 해결이 되고 두통은 해결이 되지 않아 그때부터 인터넷에 진통제를 검색하게 됐다. 그러다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마약성진통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정신과에 가서 처방을 부탁했더니 바로 마약성진통제인 OO를 처방해줬다”고 했다.
마약성진통제를 복용한 지 한 달, 두 달이 지나다 보니 이씨의 약물사용 목적은 통증을 잡는 것에서 편안함을 쫓는 것으로 바뀌었다. 통증을 없애는 것보다 약물이 주는 안락함과 행복함에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약 복용량도 갈수록 늘었다. 당시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으로, 여러 병원을 다니며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을 수 있었다.
이씨는 “그때는 이름만 대면 아는 그런 유명한 병원에서도 다 약을 처방해줬다”며 “한 번에 한달 치를 처방받을 수 있었는데, 약에 중독되다보니 더 많은 약이 필요했고 그렇게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처방을 받았다”고 했다.
하루에 3알씩 먹었던 진통제가 1년이 지나자 하루에 마약성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함께 수십 알을 복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약에서 깨기 싫어서, 그 기분을 유지하고자 약의 효과가 떨어지는 시점에 또 다시 약을 복용하는 식으로 상태가 악화됐다. 이 같은 중독 상태는 3년 넘게 지속됐다.
이씨는 “그렇게 4년간 약을 하면서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엄청나게 망가졌다”며 “한때 기술교육원을 다녀보기도 했는데 맨날 약에 취해 졸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무언가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는 의료용마약류도 사용했다.
이씨는 “이 약을 복용하면 한 자세로 멈추게 돼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는데 나 역시도 한 자세로 오래있다 보니 실제로 척추가 틀어졌다”며 “또 그렇게 약을 먹다보니 매일 구토를 하며 건강이 악화됐다”고 했다.
◆단약 계기는 ‘가족’, 단약 성공은 재활센터에서의 ‘소속감·관계’
이씨는 약에 중독된 채로 지냈으나 항상 가족들이 눈에 밟혔다.
이씨는 “당시 나는 약으로 행복을 쫒았으나, 가족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며 “내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가족들은 크게 걱정했고, 고생하는 아버지와 동생들에게도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단약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단약 계기는 가족이었으나 자신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재활센터였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중독 당시 대구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약을 끊고 싶어서 검색해보니 재활센터가 나왔다”며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 7,8번씩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센터에서 서울에 와서 재활을 받아보라는 제안이 있었다. 그때 자퇴를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이씨 역시 한 번에 단약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단약을 결심하고 고통 속에서 약을 끊었으나 8개월 뒤 다시 약에 손을 댔다.
이씨는 “재활센터를 방문하기 전 8개월 간 홀로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이후 재활센터를 방문했다”며 “재활센터를 본격적으로 다니면서 약을 끊었다. 마약성진통제뿐 아니라 이 때는 신경안정제까지도 복용을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재활센터에서의 소속감과 관계가 자신을 회복시켰다고 했다. 치료보다 재활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무엇보다 재활센터는 내가 소속감이 생겼다는 것부터 위안을 준다”며 “중독 당시 병원에 입원도 해봤지만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기오니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소속감이 생겼고, 나를 신경써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을 느끼면서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사실 단약하고 회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내가 볼 땐 재활센터에 오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다시 약을 하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이들 상당수는 다시 돌아온다. 다시 올 수 있는 곳(재활센터)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중독자들 중에는 정말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도 갈 곳이 없었다면 약을 끊지 못하고 계속 달렸을 거라 생각한다”며 “재활센터에 오기 전에는 약물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여기서는 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을 나에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활센터에서 나를 믿어줬다는 신뢰감, 그런 관계 때문에 재발했다가도 다시 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여기서는 중독의 반대말을 관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마약중독재활센터 전국 3곳뿐…전국 확대 노력 필요해
중독재활센터는 식약처 산하 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한다. 마약류 중독자 조기발견·상담·회복·치료 및 사회복귀를 위한 중독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중앙) 재활센터의 경우 일대일 상담을 포함해 미술치료, 스트레스관리, 자조모임, 이야기치료, 가족교육, 매체활용치유 등 23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단약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재활센터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 있는 재활센터는 서울과 부산(영남권), 대전(충청권)이 유일하다. 충청권 재활센터는 3년만에야 최근 개소했다.
재활센터 숫자도 부족하지만 재활센터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중앙 재활센터에 프로그램 등록자 수는 626명에 달했는데, 상담사는 현재 외부상담자 포함 6명뿐이다.
이에 식약처는 중독재활센터 규모를 전국 17개 시도에 확대하고, 기존 재활센터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강원석 사무총장은 “국가 사회적으로 마약중독 재활에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중독자들과 가족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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