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풍동2지구…선풍기도 없는 그늘막서 휴식
정수기까지 왕복 20분…휴게실 에어컨도 없어
매년 온열질환 사망 다수…고용부 "시정 조치"
[서울=뉴시스] 홍세희 기자 = "기온이 32도가 넘는 데 쉴 공간이라고는 그늘막 하나가 전부입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2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A씨는 "그나마 있는 그늘막에는 선풍기는커녕 앉아서 쉴 의자도 없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건설 현장 특성상 근로자들은 일하는 내내 강한 햇볕에 장시간 노출될 수밖에 없다. A씨가 일하고 있는 고양시에는 지난주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27일 현장 관계자 등에 따르면 '풍동2지구 A-1, 2, 4블록'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1동 기준 하루 약 200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일하는데 별도의 휴게시간이 정해지지 않아 '눈치껏' 쉬어야 한다는 게 근로자들의 설명이다.
A씨는 "1동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그늘막에서 쉬려면 4동까지 가야 한다"며 "그늘막에는 대형 선풍기는커녕 의자도 제대로 없어 서서 쉬거나 뜨거운 바닥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풍동2지구 건설 현장에는 현장 입구와 가까운 7동 인근에 정수기와 제빙기가 설치돼 있다. A씨가 일하는 1동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그는 "현장에 제빙기와 정수기는 현장 입구 쪽에만 설치돼 있다. 물을 마시려면 왕복 20분이 소요되다 보니 작업 시작 전 개인 물통에 물을 담아와 중간중간 마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여름철만 되면 온열질환에 노출되는 근로자가 늘어난다. 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여름철 온열질환 근로자는 총 152명으로, 이 중 사망자는 23명에 달했다.
지난해 7월에는 경기 시흥시 한 건설 현장에서 퇴근하던 근로자가 어지러움을 느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대전 유성구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도 근무 중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고 휴식을 취했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다시 쇼크가 발생해 숨을 거뒀다.
특히 열사병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직업성 질병'에 포함돼 사업장에서 열사병 환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거나,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 아파트 시공사는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 내에 있는 B 대형건설사다. B건설사는 여름철 폭염과 태풍 등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고안전책임자(CSO) 산하에 '혹서기 비상대응반'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별로 폭염 대응현황을 점검하는 점검팀까지 두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같은 안전대책을 체감하기 어렵다는게 근로자들의 주장이다.
B건설사에 따르면 현재 법적으로 설치가 의무화된 휴게공간은 현장 입구 쪽에 마련된 안전교육장과 협력업체 휴게실 등 2곳이다.
현재 안전교육장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만 근로자들의 탈의실 등으로 사용되는 협력업체 휴게실에는 에어컨마저도 설치돼 있지 않다.
A씨는 "몇 시간씩 땡볕에서 일하다 보니 점심 식사 후 시원한 곳에서 쉬어야 회복이 되는데 협력업체 휴게실은 에어컨도 없어서 한증막이랑 다름없다"며 "한 달 전부터 민원을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시정하겠다'라는 말뿐"이라고 밝혔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18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다. 휴게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최대 1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설치·관리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장에 대한 현장 조사 결과, 근로자 휴게실이 설치는 돼 있지만 관리 기준상 미비한 부분이 있어 시정 조치를 내렸다"라며 "추후 현장 방문에도 조치가 돼 있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처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B건설사 관계자는 "다가오는 혹서기를 앞두고 안전한 작업을 위해 작업자 휴게시설은 물론 에어컨 작동, 제빙기 상태 등 작업자들의 공간을 좀 더 세심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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