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대 속 '4년제 첨단학과' 신설 불 붙나…법령 손질

기사등록 2023/06/11 13:00:00 최종수정 2023/06/11 13:06:05

교육부, 5일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이미 올 입시에 '4년제' 혁신신약학과 다수 신설

의료계-대학 이견…교육부 "학과 신설, 대학 자율"


[서울=뉴시스]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2023.06.11. 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교육부가 법령을 고쳐 6년제 의·약대 등 의약학계열 단과대학에서도 4년제 학과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졸업생은 면허는 못 따지만 관련 산업에 진출할 수는 있다.

정부의 첨단분야 학과 확대 기조 속 일부 약대가 4년제 혁신신약학과를 올 입시부터 신설한 가운데 이뤄진 조치라 다른 대학으로 번져 나갈 지 주목된다.

11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입법예고한 개정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수업연한을 6년으로 하는 경우를 규정한 조문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수의사, 약사를 양성하는 학사학위과정'으로 고쳤다.

기존 법령에는 의과'대학', 약학'대학' 등 '대학'으로 표현돼 있었는데, 이 표현이 단과대학이 아닌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6년제 교육과정을 의미했다며 오해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이들 면허를 따려 국가고시에 응시하려면 지금처럼 6년제 과정을 졸업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 전에도 의약계열 단과대학 내에서 면허 취득과 무관한 자연대, 공대 같은 4년제 학과를 운영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경희대 약대 '약과학과'가 예시다.

겉보기에는 바뀌는 게 없지만, 이번 법령 개정은 지난해 하반기 첨단분야 학과 정원 확대 과정에서 제기됐던 대학들의 요구를 고려한 조처다.

당시 전국 약대 협의체 한국약학교육협의회(약교협)가 6년제 학위과정만 운영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약대에도 4년제 '혁신신약학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교육부에 건의한 바 있다.

교육부는 "대학 현장에서는 해당 단과대학 내에 4년제 학위과정을 설치하거나 운영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아는 등 혼란이 있다"며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수의사, 약사 양성과 관련 없는 학과를 설치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세종=뉴시스] 교육부가 지난 5일 입법예고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중 일부 내용. (사진=교육부 홈페이지 갈무리). 2023.06.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법령이 개정되면 대학들이 약대나 의대, 치대, 수의대 교수나 기자재 등을 활용한 4년제 비(非) 면허 학과 신설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첨단 분야 인재양성'이라는 명분도 열어줬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분야 규제 개선을 주문했고, 교육부는 이전 정부에서 진행하던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에 속도를 내 규제를 대폭 풀었다.

대학설립·운영규정은 대학이 학과를 만들거나 정원을 늘리기 위해 지켜야만 하는 교지(땅), 교사(건물),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4대 요건'을 담은 법령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이를 개정, 차세대 반도체·바이오 헬스·맞춤형 헬스케어·혁신신약 등 별도로 정한 21개 첨단 분야에 한해서 교원확보율만 채우면 학과를 신설하고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2024학년도 학생 정원 조정 계획'을 알리고 학과 신·증설 계획을 받아 심사, 지난 4월 확정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수도권 162명, 비수도권 100명 등 총 262명이 증원됐다. 다른 학과 정원을 줄이지 않은 '순증'이다.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혁신신약전공·디지털헬스케어전공 각 56명 ▲가천대 바이오로직스학과 50명 ▲충북대 바이오헬스학부 70명 ▲경북대 혁신신약학과 30명 이상 5개 학과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자체 정원 조정을 통해 혁신신약학과(30명)를 신설한 계명대 등이 있다.

모두 이번 입시부터 신입생을 선발한다. 아직 교과과정 등을 확정하지 못한 서울대·충북대를 뺀 3곳은 신설 학과 신입생을 약대에서 뽑겠다고 공고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4월27일 교육부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치르는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등 수도권 4년제 10곳의 첨단분야 학부 입학정원 817명 증원을 승인했다. 지방대도 1012명이 늘어나 총 1829명이 추가됐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약대에서는 융합교육을 위해 4년제 학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존 6년제 과정은 임상 교육 전문성에 특화돼 있지만, 높은 졸업학점 조건 등으로 학생들이 부전공도 하지 못할 만큼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계명대 약대 학장인 손동환 약교협 이사장은 "학과를 증설하는 것은 수요와 의지가 있어야 하고 자본을 많이 투입해야 하지만, 수도권에 있는 많은 학교가 (신설을) 희망하고 있다"며 "수도권 대학은 증원 억제 정책도 있으니 교육부의 계획이 나오면 그에 따라 (신설에) 응할 곳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보건의료계에서는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월에도 대한약사회가 성명을 내고 혁신신약학과 신설 논의에 강력히 반대하며 유사 학과가 이미 44개 학과에 달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에 손 이사장은 "면허를 취득한 약사는 법적으로 조제권, 제조관리, 품질관리 권한을 보장 받는다"며 "미국, 일본에도 면허 취득 과정과 비 면허 과정이 운영되며, 비 면허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이 제약 산업을 견인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고려한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 "그런 의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약사회 규탄 성명에 자료를 내 "학과 신설과 설치는 대학이 해당 분야 발전 가능성, 인력 수급 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사항"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학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번 법령 개정에 대해서도 교육부 관계자는 "합리적이지 않은 조문을 정비한 것일 뿐, 인재 양성 방안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다음달 17일까지 통합입법예고센터나 담당 부서를 통해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받은 뒤 개정 절차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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