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지구 살리기 맞나? 역행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기사등록 2023/06/08 10:34:16 최종수정 2023/06/12 14:28:41

제주시 구좌읍 대한실업 제주지점

도내 400여곳서 회수된 일회용컵 선별·압축

"시행 6개월 만에 처음 보내…회수량 극소수"

시설 없어 운송…"재활용에 화석연료 사용"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자원업사이클링 기업 ㈜대한실업 제주지점 내 일회용컵 선별 작업장. 제주도 내 400여곳으로부터 회수된 일회용컵들은 모두 이 곳에서 분류돼 압축 및 운송된다. 2023.06.07.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2008년 폐지된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15년 만에 부활했다. 제주와 세종시에 국한돼 시행되고 있지만 '쓰레기 정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자원순환 보증금제의 시금석'이라고 불릴 만큼 기대가 높다.

'지구를 살리자'는 제도 취지는 누구나 공감한다. 다만 현행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과연 자원 순환에 기여하긴 하는 것일까. 카페에서 음료를 계산할 때 웃돈 300원을 주고, 반납할 때 다시 300원을 돌려받는 '일회용컵'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함께 살펴봤다.

◆"400여 곳에서 수거하지만 '극소수' 일회용컵…300원은 어디에"

7일 찾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소재 자원업사이클링 기업인 (주)대한실업 제주지점. 작업장 입구에는 선별된 페트병 더미들이 성인 키보다 높게 쌓여져 있다. 대형 압축기들이 내는 '텅텅' 소리와 함께 작업자들이 커다란 마대에 담긴 플라스틱을 선별하고 있다. 이 곳은 제주도 내 일회용컵 보증금제 대상 사업장 369곳과 재활용도움센터 90여곳으로부터 회수된 모든 일회용컵들의 종착지다.

"회수 업체에서 일회용컵들을 수거해 오는데, 종이랑 플라스틱, 페트병들이 뒤섞여있어 하나하나 손으로 선별 작업을 합니다. 플라스틱은 재질에 따라 PET(페트병), PP(폴리프로필렌) 등으로 나누고요. 그런 다음 압축을 해서 바깥에 있는 것처럼 더미로 만들어요. 제주에서는 일회용컵을 재가공 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서 세척이나 이런 것도 못하고 그냥 여기서 1차적으로 압축만 합니다. 페트병 더미가 한 24개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수거량이 너무 적어서 화물차(8.5t) 한 대도 안 나오죠. 오늘 처음으로 4개를 시험 삼아 육지로 보냈습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자원업사이클링 기업 ㈜대한실업 제주지점 작업장 앞에 선별된 플라스틱 더미가 쌓여있다. 2023.06.07. oyj4343@newsis.com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곽준석 과장은 이 같이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내 일회용컵은 지난해 12월 21일부터 현재까지 7t 정도 수거됐다. 통상 화물차 한 대에 17t가량의 일회용컵을 실을 수 있지만 회수된 양이 턱없이 부족해 시행 6개월동안 모은 일회용컵을 이날 처음 보냈다. 이 마저도 5t이 전부다. 회수된 일회용컵이 많아야 마진이 남는 사업인데, 반년동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형편없었다고 한다. 한숨을 내쉰 곽 과장은 "시장성보다 미래성장성을 본 것"이라고 애둘러 표현했다.

◆"수익성 없는 재가공시설…화석연료 살리려고 화석연료 쓴다"

환경 활동가들은 제주에 재가공시설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곽 과장은 이에 대해 "이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고도의 과학기술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공장 하나를 지으려면 환경, 안전, 인력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일회용컵 하나만 보고 운영하기엔 수익성이 떨어진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받쳐주는 것도 아닌데 누가 하겠나"고 말했다.

압축된 일회용컵들은 화물차에 실려 제주항으로 향한 뒤 선박을 통해 경기도 소재 재가공시설로 간다. 이 과정에서도 환경오염이 발생한다. 플라스틱인 일회용컵은 90%가 석탄, 석유 등과 같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 재가공시설이 없는 탓에 운송 과정에서 또다시 화석연료가 쓰여지는 것이다. 화석 연료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의 원인으로 꼽히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한계점이자 제도 취지를 역행하는 대목이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자원업사이클링 기업 ㈜대한실업 제주지점에서 작업자들이 회수된 플라스틱 일회용컵을 선별하고 있다. 2023.06.07. oyj4343@newsis.com

◆"길가·해안가에 수두룩한 '300원' 일회용컵…미래 없어"

이날 시민참여단으로 함께 온 도민 A(30대·여)씨는 "전부터 생각했지만 현장을 보고 나니 더욱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미래가 없다고 느낀다. "1주일에 두 세번씩 해안가에서 플로깅을 하는데, 관광지마다 라벨이 붙은 일회용컵들이 길가에 수두룩하다. 관광객들이 잘 모르는 건지, 300원을 바닥에 버리고 간다"고 말했다. 이어 "몸에 벤 일회용품들의 편리성과 휴대성을 이러한 보증금제도로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기름을 써가며 재활용하는게 무슨 소용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국 63개 자원순환 시민모임의 연대기구인 컵가디언즈는 지난 3일과 4일 이틀간 도내 해안가와 길거리에서 일회용컵 줍기 캠페인을 통해 689개의 일회용컵을 발견했다. 이 중 3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제 일회용컵은 368개(53.4%)로 나타났다. 그린피스와 충남대학교 환경공학과 장용철 교수 연구팀이 지난 3월 발표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53억개로, 한 줄로 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1.5배에 달한다.

◆'세계 최초'지만…갈 길 멀고 할 일 태산"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대한실업 제주지점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6개월동안 회수된 일회용컵 중 선별 과정을 거쳐 압축된 컵들이 화물차에 실려 타 지역으로 운송되고 있다. 화물차 한 대에는 17t가량의 일회용컵을 실을 수 있지만, 반년동안 선별된 컵들이 5t 남짓에 불과해 적재 공간이 남은 채 출발했다. (사진=㈜대한실업 제공) 2023.06.07. oyj4343@newsis.com  

지난 2003년 처음 시동을 건 일회용컵 보증금제도는 세계 최초로 도입됐다. 당시 일회용컵의 회수율이 떨어지고 미반환된 보증금의 사용 용도가 판촉 비용으로 쓰이는 등 실효성이 떨어져 결국 폐지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증금제에 대한 우려는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1년간 제주와 세종에서의 보증금제 성공 여부를 지켜보고 전국 확대 시행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날 함께한 환경부 산하 제주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모아지는 일회용컵들이 어떻게 재활용 되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며 "제도 초기 안정적인 정착화를 위해 도내 매장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풀어나갈 과제들에 대해 좀 더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가는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오는 2040년까지 플라스틱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고 재활용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2040 플라스틱 제로 제주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총 1조813억원을 투입해 ▲플라스틱 발생 원천 저감 ▲재활용 확대 ▲자원순환 인프라 구축 ▲자원순환 분야 탄소중립 산업 육성 ▲범사회적 탈 플라스틱 참여 촉진 등 5개 부문 30개 세부과제를 추진하게 된다. 폐플라스틱 배출량은 지난 2020년 6만6171t에 비해 오는 2030년 4만6320t으로, 2040년에는 3만3086t으로 줄인다는 목표다.


◎공감언론 뉴시스 oyj4343@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