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소장품으로 용인에 설립
1982년 개관 고미술품 전시장...1년 반간 리노베이션 탈바꿈
김환기, 한국 최초 추상화가·132억 낙찰가 최고 비싼 화가
'하늘 한 점' 주제 18일 개막...유화·신문지작업 조각 등 120점 공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세운 김환기의 '132억 원'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화가 중 최고 '블루칩 작가'로 꼽히는 김환기(1913~1974)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전시가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다.
국내 최고의 미술관에서 펼치는 국내 최고 화가의 전시로, 미술사적 의미를 더한다. 규모 면에서도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그간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초기작과 미공개작, 드로잉을 최초로 선보여 '비싼 작가'로만 알려진 '김환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한국미술의 선구자로 조명하는 김환기의 구상에서 추상으로 40년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913년 전라남도 남해 신안군 가좌도에서 태어나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 그는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다. 한국적 추상 미술을 추구했던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며 미래적으로 K-아트 위엄을 제대로 전한다.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운영하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이 1년 반 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18일부터 '한 점 하늘-김환기 a dot a sky_kim whanki'를 개최한다. 코로나19로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2020년 예정됐다가 취소된 전시로 3년 만에 여는 전시다. 호암미술관은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고급스런 공간이었다. 자연 경관이 예술로, 봄 가을 정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동안 토기와 도자기, 서화와 금속공예품 등 고미술품 전시를 열다, 현대 미술품의 대규모 전시는 처음 선보인다.
이번 김환기 회고전은 호암미술관답게 품격있고 섬세하게 개최한다. 그간 전시를 통해 보기 어려웠던 김환기의 여러 초기작뿐 아니라 최초로 공개되는 1950년대 스케치북과 70년대 점화 등이 소장가들의 협조로 선보인다. 또한 작가의 유족이 수십 년 간 간직해온 김환기의 유품과 자료의 일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다.
스물네살 청년 김환기의 사진, 작가가 애장한 도자기와 선반, 삽화와 기고문이 꼼꼼히 정리된 스크랩북, 파리 개인전의 방명록, 문화예술인 160명이 이름을 올린 1974년 추도식 팸플릿 등 흥미로운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 김환기 회고전...한국 미술 추상 선구자
김환기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 추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구축주의 등 당시의 전위미술인 추상미술사조를 익히고 1937년 귀국하여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은 김환기가 작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다. 민족예술의 계승을 주창한 김용준, 이태준, 최순우 등과 교류하며 전통미술에 대한 식견과 사랑을 키웠고, 자연과 전통의 현대적 표현을 목표로 평생을 추상에 매진했다.
김환기는 전쟁 직후의 열악한 사회문화 조건 속에서 우리 미술의 발전과 국제적 성장을 꿈꾼 20세기 한국미술의 리더이기도 했다. 동시대 미술과의 조화로운 융화와 동참을 열망하며 스스로 국제 미술계에 도전한 그는 전통에 근간한 자신의 예술을 굳건히 지키고 한편으로는 미술 조류의 변화를 흡수하면서 집요하게 작업을 전개했다.
그의 한결같은 예술 여정을 이끈 것은 한국적 예술에 대한 굳은 신념과 자신감, 절망을 이겨내는 인내였다.
50세에 건너간 뉴욕에서 김환기는 무수한 이방인 무명 작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을 찾기 위해 치열하고 꾸준하게 조형실험을 이어갔고, 만년에 이르러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동양적 사유와 관조를 담은 전면점화에 도달한다.
김환기의 점화에는 1930년대부터 이어져온 그의 추상 여정이 함축되어 있고,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는 자연과 인간, 예술을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에 대한 확장된 사유가 담겨 있다.
이번 회고전의 제목인 ‘한 점 하늘’은 이러한 김환기의 40년 예술 세계의 특징을 담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달항아리를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고국과 친구를 그리워하던 그에게 하늘은 예술의 큰 원천인 동시에 자연과 삶, 세상을 함축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한 점 하늘_김환기' 120점 전시...초기작~미공개작 첫 공개
1,2층 전시실 전관에서 약 120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김환기가 한국적 추상에 대한 개념과 형식을 구축한 후 치열한 조형실험을 거쳐 점화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와 연속성을 주지하며 살펴본다.
시대별 대표작은 물론, 도판으로만 확인되던 여러 초기작들과 미공개작,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스케치북과 드로잉들을 최초로 선보인다. 또한 유족의 협조로 김환기의 유품과 편지, 청년시절의 사진, 낡은 스크랩북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자료들은 작가의 회고전을 더욱 의미있고 풍성하게 해주며 이후 작가 연구를 위한 귀중한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 1부:달 항아리 (2층 전시실)
전시 1부는 김환기의 예술이념과 추상형식이 성립된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동일시하며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켜 갔다.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등의 모티프가 그림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으며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론도'(1938)는 물론, 김환기 특유의 한국적 추상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달과 나무'(1948), 도자기가 빼곡한 성북동집 작업실 나무선반을 연상시키는 '항아리'(1956), 시간을 초월한 자연과 예술의 영원성을 표현한 '영원의 노래'(1957), 전통미술양식과 점화의 씨앗이 함께 공존하는 '여름달밤'(1961) 등이 전시되며, 다수의 초기 작업들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호암미술관은 "작가의 유일한 벽화대작 '여인들과 항아리'(1960)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발견된 작가 수첩을 통해 제작 연도가 1960년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개되어 주목 받은 작품이다.
▶전시 2부. 거대한 작은 점 (1층 전시실)
2부는 김환기가 뉴욕 이주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한국적 이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뉴욕 시기 초기까지 이어지던 풍경의 요소를 점과 선으로 흡수하여 추상성을 높이고 다채로운 점, 선, 면의 구성으로 수많은 작업을 시도한 끝에 점화에 확신을 얻고 1969년과 1970년 사이에 전면점화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달과 산 등 풍경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으로 대체되는 '북서풍 30–Ⅷ–65'(1965),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우주’(132억 원)라는 별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5–IV–71 #200'(1971), 동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하늘과 땅24–Ⅸ–73 #320'(1973)등이 함께 전시되며, 작고 한 달 전에 죽음을 예감하듯 그린 검은 점화 '17–VI–74 #337'(1974)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김환기는 한국 현대미술 역사...작가 연구 세미나도 개최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김환기는 한국현대 미술의 역사이자 상징같은 존재로 ’고전’을 만들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대로 그의 예술은 오늘날에도 공명한다”며 “그러나 김환기를 수식하는 최근의 단편적인 수사들은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다시 한번 총제적으로 살펴보는 전시가 필요함을 일깨운다”고 회고전의 의미를 밝혔다.
전시와 연계하여 김환기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유를 확장해 보는 프로그램들이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태현선 실장이 전시 완성까지의 과정과 기획의도 등을 직접 소개하는 큐레이터 토크가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또한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유를 확장해 볼 수 있는 작가연구 세미나 시리즈가 △백승이(환기미술관 학예사), △김현숙(근대미술사학자), △함돈균(문학평론가), △장석주(시인), △진지영(리움미술관 보존연구원)의 참여로 호암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9월1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하며 현장 발권도 가능하다. 관람료 1만4000원.
호암 이병철(1910~1987)삼성그룹의 창업주가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했다. 경기 용인시 포곡읍에 위치, 호수와 정원 등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 자리하고 있는 호암미술관은 전통한옥 형태의 본관 건물과 전통정원 희원(熙園)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앞으로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하나의 미술관, 두 개의 장소’로서 전시 및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기획, 운영 할 계획”이라며 “이번 김환기 회고전을 필두로 호암미술관은 고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기획전 및 소장품특별전 등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호암미술관의 이번 건축 내부 리노베이션은 최소한의 디테일로, 과장되지 않는 기존의 건축과 어우러지는 공간디자인을 완성했다. 과거와 현재, 외부와 내부, 건축과 사람, 자연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공간을 지향한다. 또한 기존의 건축 소재와 조화를 이루도록 돌(석재), 나무(목재), 철(금속) 가공을 최소화해 사용했다.
로비는 기존의 굵은 선을 유지하여 단정히 정리했고 공간 일부를 확장해 안내데스크를 새롭게 설치해 편의와 개방감을 더 했다. 2층 라운지는 창호를 확대하여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희원과 외부전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강연 및 체험프로그램을 위한 워크숍룸을 조성하고, 희원의 찻집은 젊은 작가 전시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멀티룸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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