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드북'에 출연 중인 배우 민경아는 주인공 '안나'와 똑 닮아있다. 밝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내뿜으며 그야말로 안나를 몸에 착 붙였다.
최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인근에서 만난 민경아는 "당당한 안나의 모습에 저도 더 긍정적으로 물들고 있다"며 "공연을 끝내고 나면 더 기분 좋아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레드북'은 숙녀보단 그저 '나'로 살고 싶은 안나가 세상의 편견과 비난을 이겨내고 작가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19세기 런던,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다. 2018년 초연부터 호평받았고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민경아와 함께 옥주현, 박진주가 안나 역을 맡았다.
민경아는 안나와 솔직하고 대담한 성격이 비슷하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유독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다.
"저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는 타입이에요. 궁금한 게 있으면 꼭 해봐야 하죠.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점도 비슷해요. 그래서 안나를 연기하며 모든 게 자연스러웠어요.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공감됐죠."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안나는 고민해요. 나만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인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계속 질문하죠. 연출님도 이 신에선 '난 뭐지' 고민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 한다고 했어요. 안나는 특별한 척하는 게 아니에요. 솔직함을 지닌 평범한 한 여자일 뿐이죠. 무대에 나오면서 안나로 스위치가 탁 켜지는데, 가장 떨리는 순간이에요."
가사 하나하나를 내뱉으며 민경아도 위로받는다. 1막 끝곡인 '나는 야한 여자' 가사가 그렇다. '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춰 나를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과 밤새도록 사랑을 나눠'라는 가사가 와닿았단다. 안나가 세상의 시선에 맞서 자신을 '야한 여자', '나쁜 여자'라고 말하며 작가로서 의지를 다지는 장면이다.
"배우라는 직업도 그렇잖아요. 누군가 나를 비판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죠. 그런 비난과 질타를 다 받아들이고 오히려 더 사랑하자고 생각하면 단단해지는 느낌이에요.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가사를 담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을 부를 땐 마음이 충만해져요. 두려울 게 없어지고 당당해지죠."
2015년 뮤지컬 '아가사' 앙상블로 활동을 시작한 민경아는 데뷔 무대였던 극장에 8년 만에 돌아와 감회도 새롭다. "데뷔했던 극장에 '레드북' 주역으로 다시 서니 신기하다"며 "그땐 엄청 떨렸던 기억만 난다. 지금은 책임감이 훨씬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 건 불과 몇 년 안 됐다"며 "줄곧 여성스러운 역할을 많이 했는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답답함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렌트'(자유로운 행위예술가 '모린' 역을 맡았다)가 전환점이 돼서 '시카고'의 '록시'도 하고, '레드북'도 하게 된 거죠. 본체가 발랄해서 밝은 캐릭터 연기가 편하지만, 재밌는 건 오히려 반대되는 차분한 배역이에요. 아직 해보지 않은 어둡고 중성적인 느낌도 궁금해요. 나중에 38살쯤 연기가 더 무르익으면 '스위니토드'의 '러빗부인'도 꼭 해보고 싶어요."
자신을 성장시킨 작품으로는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를 꼽았다. '렌트', '시카고' 등 이미지 변신을 했던 작품이 아니라 의외이기도 했다. 2018년에 이어 2021년 두 번째로 함께한 무대가 특별했단다. "그동안 무대가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는데, 무대의 공기가 따뜻했죠. 연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그때 이후로 제 안에 뭔가 하나가 쌓인 느낌이었어요."
민경아는 연기로 승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전부터 도전 목록에 올려놨던 연극에 대한 열망도 여전히 보였다. "배우로서 길은 차근차근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제가 어디로 갈지 또 궁금하죠. 제 한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요. 연기로 더 성장하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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