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신작 개인전...부산 국제갤러리에서 공개
걷는 사람들→'춤추는 사람들' 흔들흔들 중독성
평면·입체·영상· VR과 퍼포먼스까지...참여형 전시
[부산=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유행은 돌고 돈다. 다 지나가지만 미술이 잡으면 예술이 돤다.
'영국 현대미술 거장' 줄리안 오피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0년 대유행한 춤, '셔플댄스'라니...
"유튜브에서 딱 보자마자 이거다. 엄청난 영감을 받았죠."
'춤바람'이 나서 온 오피는 '흔들흔들' 긍정 에너지를 퍼트리고 있다. 그의 특기 '걷는 사람들'에 기술을 탑재한 '춤추는 사람들'은 중독성을 선사한다. 강렬한 비트에 댄스가 어우러진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몸이 흥이 난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입한다.
5년 만에 부산 국제갤러리에 귀환한 그의 신작은 성공적이다. 전시장은 그야말로 10년 전 떼지어 추던 셔플댄스의 추억까지 재생된다. 음악소리와 함께한 LED 영상 작품들을 필두로 모두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선보인 ‘걷는 사람들’의 형태를 탈피해 새로운 인체의 움직임을 찾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았죠."
줄리안 오피는 굵은 선으로 단순화한 '걸어가는사람들'로 세계를 누벼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서울역 서울스퀘어 빌딩에 '걷는 사람들'이 저녁이면 투사되어 퇴근길을 위로하고 있어 친숙한 작품이다.
195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오피는 1982년 영국 명문인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후 현재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은 보기에 쉽다. 한눈에 바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 동물, 건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단순화된 현대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고대 초상화, 이집트의 상형문자, 일본의 목판화뿐 아니라 공공 및 교통 표지판, 각종 안내판, 공항 LED 전광판 등에서도 두루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이번 신작은 혹독하게 건너온 코로나 사태가 변화의 물꼬를 텄다. '춤추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영국이 봉쇄된 기간에 탄생됐다.
"그때 조용하고 외로운 분위기였어요. 코로나가 끝나갈 즈음 작품을 통해 뭔가 아주 빠르고 동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어느날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찾았는데 틱톡에서 셔플댄스 영상을 봤다. 젊은사람들이 셀프촬영을 하면서 굉장히 빠르고 가볍게 춤추는 영상이었다. 바로 이 때 영감을 받았다.
"'걷는 행위 말고 춤추는 행위를 탐구해보자.'"
간단하고 반복적인 동작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셔플댄스에 매료됐지만, 어떻게 구현해야 될지 몰랐다. 현재 프로 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딸이 수호천사가 됐다. 딸과 함께 춤을 고안하고 이미지로 표현하는 동시에 사운드 요소까지 만들어야 했다. "딸과 친구들이 100비트나 되는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춰져서 영상 작품을 마련할 수 있었죠."
눈 앞에서 셔플댄스를 직관한 덕분에 단순한 이미지이지만 한층 더 증폭된 율동감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춤 영상의 스틸컷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들은 페인팅과 모자이크 작품으로도 제작됐다.
"춤추는 영상은 알고 보면 60개의 다른 드로잉을 이어 붙인 겁니다. 영상을 쪼개보면 각각의 회화가 될 수 있어요.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죠."
그는 "그리스 로마시대나 이집트 시대 회화는 돌을 잘게 쪼개서 이어 붙였다"면서 자신이 모자이크로 작품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 작품중 돌을 쪼개 붙인 댄스 회화는 LED 영상 작품의 픽셀과도 상호 작용합니다. 전시장에 '현대 버전'과 '고대 버전'이 교차되고 있는 것이죠." 생기와 율동감을 더하는 현대적인 작품이지만 수천년 미술사를 관통해 나온 작품이라는 뜻이다.
10년 전 춤이 촌스럽지 않고 경쾌하게 다가오는건 알록달록 색감도 한몫한다. "댄스 프로젝트를 하면서 딸에게 춤을 춰달라 했는데 사실 옷차림이 비비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색상을 언어로서 사용해보고 싶었어요. 어느날 가족과 스키를 타러 갔는데 스키복이 형형색색이더라고요. 그 색을 차용한 겁니다."
3일 부산에서 만난 오피는 댄서로 작품에 공헌한 딸을 소개하고 '걷는 사람' 시연을 하기도 했다. 매번 전시때 마다 프로필 사진도 자신의 그림으로 대신하며 얼굴 공개를 극도로 꺼려온 그는 이번 전시장에서만 자신의 모습 촬영을 허락했다.하지만 그마저도 VR 고글을 쓰거나 무표정한 채 촬영에 응했다. 자신보다 작품이 더 알려지고 보여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이제 실제와 가상 세계로 관심이 확장됐다. 이번 전시에는 춤추는 사람들 영상과 함께 총 4개의 VR 부스도 설치되어 있다. VR 고글을 끼고 부스 내부를 거닐면 가상 세계에서 ‘재현 된’ 조각, 영상, 페인팅 등의 다양한 작업들을 보게 된다. 마치 메트릭스 세상 같다. 현실에서 또 다른 가상현실의 체험은 우리의 현실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눈뜨게 한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많은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떤 매개를 통해서 공간을, 현상을 이해하잖아요."
오피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미지에 의존하며 특히 디지털 디바이스라는 중간 매개체를 한번 거쳐서 우리의 눈으로 전달되는 방식에 더 익숙해졌다"며 이 문제적 현상을 우리가 스스로발견하게 하는 참여의 미학으로 전시를 풀어냈다.
전시장에 4개의 러닝머신이 놓여 있는 배경이다. 전시기간 내내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관람객이면 누구나 직접 걸어볼 수 있는 참여형 작품이다. 그의 회화 ‘걷는 사람들’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작품으로, 평면 작업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듯한 감흥을 선사한다.
평면과 입체, VR과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작품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작품을 보거나 사진을 찍으면 순간적으로 작품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는 극도로 계획된 의도다.
“사람들은 전시장에서도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들고 그림을 보잖아요."
항상 주어진 공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조율할지를 고민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지 않는 것은 작가에게 큰 도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를 이용해 작품의 일부가 되고 더욱 ‘인증샷’을 찍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예술작품은 시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을 요구하지만 저는 다층적인 감각을 사용해서 몰입할 수 있도록, 관객이 제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원합니다."
경쾌하고 단순한 작품, 몰입하다 자세히 보면 무섭기도 하다. 발목이 싹둑 잘라져 있다.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걸까?
"(흐음)발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오브제로서 우아하지 않잖아요. 다른 신체는 동적인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데 발은 한 방향만 보일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요소는 아니에요. 뭐, 완전히 안 그리는 것은 아니고 가끔 그립니다. 굳이 꺼려하는 이유요? 발을 그리게 되면 시선이 아래로 쏠리는데 저는 방해가 된다 생각했어요. 동작을 강조하고 속도를 강조하기 때문이죠. 2000년 전 동굴벽화도 보면 머리도 동그라미로만 그려졌고 팔 다리도 작대기로만 묘사되어 있잖아요. 하하~" 전시는 7월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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