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우스트' 각색 작업..."뼈를 깎았다"
양정웅 연출은 연극 '파우스트' 각색 작업을 하며 세 달간 푹 빠져 살았다. '코리올라누스'를 함께했던 배우 남윤호와 당초 한 달 가량 작업을 예정했지만, 원작의 한 구절 한 구절을 파헤치면서 자연스레 연장됐다.
"문학적인 대사가 너무 아름다워요. 인간의 본성과 갈등을 표현한 수사들이 사랑스럽죠. 제가 창작을 접고 각색 작가에 머물러 있지만 위대한 고전을 만날 땐 자괴감보다 기쁨이 더 커요. 그 속에 담긴 철학과 진실을 관객들에게 메신저로 전달하고 싶죠."
최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양 연출은 "'파우스트'는 하면 할수록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며 "이번 공연을 잘 마치고 나머지 부분도 빨리 하고 싶다. 파트 투 분량은 파트 원의 두 배 정도라서 2부, 3부로 나눠서 하는 걸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파우스트' 일부분인 1부만을 다뤘다.
"대본은 괴테가 쓴 원작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평소 쉽게 접근하지 못했어도 공연을 본 후 '파우스트'를 읽는다면 괴테의 깊이를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신 LED 패널과 CG(컴퓨터 그래픽) 및 촬영 영상, 현대적 의상·소품 등을 사용해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이야기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했죠."
특히 무대엔 가로 28미터, 높이 8미터의 대형 LED 스크린이 펼쳐져 있다. 케이블을 포함해 약 6000㎏ 무게의 200여개 패널을 활용해 영상을 구현했다. 신과 악마처럼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배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또 무대 뒤편에 마련된 세트에서 실시간으로 촬영되는 영상이 송출되는 시네마 시어터를 선보이며, 무대 위와 영상 속 배우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연출을 맡으며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기울여온 양 연출은 영상을 활용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감독에 이어 지난해 미디어 아티스트로도 데뷔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연극이 디지털 영상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가 제 관심사"라며 "그 방법을 계속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의 흥행을 이끌고 있는 건 단연 악마 메피스토로 열연하고 있는 박해수다.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춘 양 연출은 '개근상'을 줄 정도라고 귀띔했다.
양 연출은 "메피스토는 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악마보다는 세속적인 현대인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뒷모습이자 내면이에요. 인간의 숨겨진 어두운 본성을 관찰하고 건드려 주는 존재죠. 그래서 기이한 분장이나 옷이 아닌, 일상적 존재처럼 보이게 했어요. '불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대사처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거죠."
또 유인촌이 연기한 파우스트는 '햄릿' 유형이라고 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유인촌 배우도 연기하면서 무엇이 맞는지 끝까지 갈등된다고 했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대사처럼 스스로 파우스트가 되는 것 같다고 고민했죠. 인간은 갈등하고 번민하는 존재인데, '사느냐 죽느냐'를 끊임없이 고뇌하는 햄릿과 같아요."
양 연출은 '페리클레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로 통해왔다. 대중에게 고전을 쉽게 전달하는 게 소명이라는 그는 앞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모두 선보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예전에 셰익스피어 극장으로 유명한 런던의 글로브 시어터에서 그리스 연극의 신인 데우스 엑스마키나를 만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스스로 약속했죠.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다 하겠다고 말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가장 많이 한 연출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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