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15년 전쯤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어요. 아주 아름다운 드레스였죠. 그런데 점점 그 옷이 그날 연주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편했어요."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9)는 항상 턱시도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그에게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반세기 만의 쇼팽 콩쿠르 여성 우승자'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는 늘 드레스 대신 턱시도를 입고, "음악 앞에서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브제예바가 오는 5월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8년만의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그는 내한에 앞서 18일 뉴시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턱시도 차림에 대해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야 음악 본연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장에서의 연주인 만큼 분위기에 걸맞는 복장을 갖추는 것이 당연해요. 하지만 그게 꼭 드레스여야 할 필요는 없죠. (드레스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그날 이후 제가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는 복장을 입기 시작했어요."
꼭 드레스여만 할 필요가 없듯 꼭 턱시도여야 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저는 이대로 아주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지금의 수트 스타일을 평생 고수할 거라는 건 아니에요. 누가 알겠어요? 몇 년 후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죠."
'쇼팽'은 그에게 아주 특별하다. 2010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고, 지금도 쇼팽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다.
"쇼팽 콩쿠르를 준비하며 그가 살았던 시대를 파고들었어요. 당시 출간된 책들을 찾아 읽고, 그가 친구로 둔 많은 작가, 화가들의 작품도 살펴봤죠. 덕분에 쇼팽에 대한 주관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비전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이 비전은 제 삶의 일부분이 돼 지금까지도 함께 하고 있어요."
아브제예바는 쇼팽이 머물렀던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난해에는 쇼팽의 탄생지인 폴란드 젤라조바볼라를 방문했다. 쇼팽의 발자취가 닿은 바르샤바 곳곳을 거닐기도 한다. "지금도 쇼팽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순간들이 많아요."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노 여제'로 꼽히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를 잇는 벨라 다비도비치와도 '쇼팽'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아르헤리치와 같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건 행복하면서도 감격스러운 일이에요. 제가 우승할 당시 아르헤리치와 다비도비치가 심사위원이었어요. 우승 후 아르헤리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아주 큰 영감을 받았죠. 다비도비치는 콩쿠르 후 뉴욕과 NHK홀에서 이뤄진 제 공연을 보러 왔어요. 그가 제 연주를 보기 위해 객석에 앉아 있다는 게 너무 영광이었어요."
그럼에도 그가 올 쇼팽 프로그램으로 관객 앞에 서는 것은 13만이다. 그는 이번 내한 무대 1부에서 폴로네이즈 2곡, 뱃노래, 전주곡, 스케르초로 각기 다른 형식과 스타일이 돋보이는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2부에서는 자유분방한 감정 표현을 중점으로 한 마주르카 4곡 그리고 고전적 형식미와 쇼팽의 낭만성이 담긴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연주를 마무리한다.
"13년 만에 올 쇼팽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는데, 저 스스로 많은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쇼팽의 음악을 한국 관객들과 공유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 매우 기대돼요."
아브제예바는 좋아하는 한국인 연주자로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를 꼽았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클래식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 알고 있어요. 클래식 분야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저에게 큰 인상을 남겼어요. 조성진과는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어요. 김봄소리 역시 제가 몹시 좋아하는 연주자이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연주자에요.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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