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SF 소설가로 20년…미래과거시제 격세지감"[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3/04/08 07:00:00 최종수정 2023/04/12 08:28:06
[서울=뉴시스] 신재우 기자 =소설가 배명훈이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 작가는 최근 7년 만에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를 출간했다. 2023.04.08. shin2roo@newsis.com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이제 더 이상 SF가 무엇인지 답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2005년 SF 공모전을 통해 데뷔해 20여 년째 SF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 배명훈(44)은 지금의 한국 SF 시장에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간 소설집 '타워'를 비롯해 장편소설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등을 펴낸 그는 "이전에는 전체 질문의 40%가 SF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는 거라면 이제는 내 작품 자체로 시선을 돌린 것 같다"며 기쁨의 미소를 보였다.

2000년대엔 'SF 작가'라는 호칭 자체가 멸칭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배 작가는 당시 SF 작가라고 소개하는 자신을 신기하게 여기던 시선을 회상했다. 물론 이제는 많은 작가가 꼽는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중 한 명으로 당당하게 이름이 오른다.

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를 내고 어느덧 7년이 흘렀다. 한국 SF가 전성기에 접어드는 시기에도 부지런히 단편소설을 써온 그는 그중 9편을 뽑아 "새로운 대표작을 갱신하기 위해" 새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를 펴냈다.

최근 7년 만에 소설집을 출간한 배명훈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뉴시스] 신재우 기자 =소설가 배명훈이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 작가는 최근 7년 만에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를 출간했다. 2023.04.08. shin2roo@newsis.com

◆세계를 다루는 소설을 쓰자 SF가 됐다

"저는 세계에 관해 쓰고 있었는데 그게 어느새 SF소설이 돼 있었어요."

배명훈이 작가로 거듭난 과정은 남다르다.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국문학도도 작가 지망생도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그에게 소설 쓰기는 "재미를 위한 취미"에 불과했다. "세계를 그리고 싶어" 쓰기 시작한 소설이 2005년 SF공모전에 당선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할 때도 연구기관에 취직해 미래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소설집 '타워'의 성공 이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어딘가에 속해있는 작가가 아니에요. 순문학이나 SF 문학이나 어딘가 구속되지 않은 거죠."

물론 그에게 SF 문학은 순문학과 큰 차이가 있다. "세계를 다루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에게 "인물에 집중하고 내면에 집중하는" 순문학은 맞지 않았다. 소설의 기승전결과 완결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순문학은 그에게 "왜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그는 "물론 순문학을 쓰는 작가들과 이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존중한다"며 "다만 순문학과 SF 문학은 분명 문법이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거듭된 연구 끝에 태어난 배명훈의 세계

"아무튼 나는 부지런히 바열음을 만들어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입이 거슬렸다. 그래서 아무리 중요한 연설 장면도 오래 지겨보기가 힘들었다. 내용이 어더든 상관없었다. 그것이 격음으로 이루어진 연설이라면 다 마잔가지였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중)

배명훈이 그리는 세계는 다채롭다. 정소연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명훈이 이제 한국 SF에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는 경쾌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쓴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파열음이 없는 세계('차카타파의 열망으로')부터 판소리 형식으로 써본 SF소설('임시 조종사')까지 다양한 설정이 돋보인다.

배명훈은 소설가가 된 이후에도 "연구"를 거듭한다. 다른 이들이 "문학적 실험"이라고 부르는 그의 소설들은 모두 "연구의 결과물"이다. 단편 '임시 조종사'만해도 8개월에 걸쳐 쓴 소설이다. 근대소설 이전의 말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던 그는 판소리의 장단과 운율을 공부하고 이를 적용해 소설을 완성했다.

"다른 사람들은 실험이라고 표현하지만 저한텐 실험보다는 결과에 가까워요. 연구를 끝내고 그걸 소설에 적용하며 완성이 되는 거죠. 연구를 하고 소설을 쓰다 보니 오히려 소재가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쓰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파열음이 사라진 미래 이야기인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를 쓰며 그는 "쓰는 과정에서도 정말 재밌었다"며 "소설을 읽은 독자가 파열음을 사용하지 않고 서평을 써준 걸 보고 내가 느낀 재미를 이 독자도 느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앞둔 그가 생각하는 한국 SF에 필요한 부분은 '평론'이다. 다양한 작품이 나오는 만큼 그는 "작품을 해석하고 본격적으로 다루는 평론과 문학상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SF 평론이 본격화되면 배명훈론도 기대할 수 있을까?

"쓰고 싶은 분이 있으면 서두르셔야 할 거예요. 읽어야 할 작품이 더 늘어나기 전에 말이죠. 저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연구하고 쓸 거니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shin2ro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