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로 5년만 연극 복귀…"죽을 정도로 떨려"
매력적인 악마 메피스토…"대사 음률에 꽂혀 접근"
"문화 힘 통한 선한 영향력…평양 공연 설 날 오길"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춤추는 듯한 여유 있는 몸짓이 익살스럽다. 그 뒤편엔 노학자 파우스트에게 달콤한 계약을 제안하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는 악마의 얼굴이 숨어있다. 연극 '파우스트'에서 매력적인 악마 메피스토로 열연 중인 배우 박해수는 "메피스토는 옛날부터 꿈꿔왔던 역할"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수리남' 등을 통해 글로벌 스타로 떠오른 박해수가 5년여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했다. 2017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주연으로 인기를 끌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2007년 연극으로 데뷔해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갈매기', '맥베스', '프랑켄슈타인'과 음악극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등에서 활약했다.
지난 6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그는 "'파우스트' 대사의 음률이 매우 아름다운데, 그 점에 꽂혀서 접근했다"고 말했다.
"저는 신체 연기가 무대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어도 전달을 위한 훌륭한 매개체이지만 몸짓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크죠."
"대사만 틀리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어요. 관객을 보면 더 떨릴까 봐 일부러 안 봤죠. 공연을 마치고 박수 쳐주는 관객들을 보니 그제야 (긴장이) 풀어지더라고요. 힘든 시기였을 땐 소극장에 관객 한 명만 있는 상태로 연기한 적도 있었는데,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객을 보니 너무 감사했어요."
한동안 영화, 드라마에만 매진한 만큼 마음 한 편엔 걱정도 있었다. "무대에서 소리(발성)가 안 들릴까봐 걱정했는데, 연습하며 싹 사라졌다. 성량은 기본적으로 있더라"라고 너스레를 떨며 "(연기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연습했다"고 말했다.
'파우스트'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땐 묘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0년 전 쓴 작품이지만 '사랑이든 쾌락이든 다 즐기고 행동하라'는 메피스토의 말은 지금 시대에 더 와닿는다. 무조건적인 악함이 아닌 악의 평범함을 고민한 까닭이다. "(과거와는 다른)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면에 다들 공감하잖아요. 현실에 비춰 악의 시초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죠. 배우로서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때맞춰 이 작품이 왔어요."
젊은 파우스트와의 동굴 신 등 길고 사유적인 대사가 많은 장면도 까다로웠다고 했다. "논리적이지 않고 사유로만 결합된 대사를 줄줄이 읊을 때 어려워요. 이를테면 머릿속에서 몇 단계를 뛰어넘거나 연상되는 그림이 휙휙 지나가는 대사인 거죠. 엄청나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어요."
파우스트 역을 맡은 유인촌도 27년 전 메피스토를 연기했다. 후배에게 여러 조언을 해줄 법한데 그보다는 동료 배우로 먼저 존중해준다고 했다. "영향을 줄까 봐 조언보단 대사를 많이 맞춰주세요. 허리를 곧게 펴고 끊임없는 에너지로 폭포수 같은 대사를 쏟아붓는데 처음엔 충격이었죠. 선생님의 노련함과 자유로움이 정말 멋있어요."
네 명의 주연을 비롯해 18명 모두 원캐스트다. "모든 배우의 열정이 대단하다"며 "원진아 배우에겐 끈기를, 박은석 배우에겐 에너지를 느낀다. 마흔살이 넘은 요즘엔 연기적으로 동료 배우들과의 관계성을 고민한다. (앙상블로) 열심히 뛰는 형, 누나들을 보며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더욱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문화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음악처럼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도 치유와 위로의 힘이 있죠. 평양의 극장에서 남자 배우로 서는 그날을 상상해봐요. 그런 시대가 오기까지 무대에서 오래도록 버티는 힘을 키우고 싶어요. 자유로운 생각과 깨끗한 영혼으로 쭉 무대에 서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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