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성소수자의 법정 승리…'법원 밖 지지'는 언제쯤

기사등록 2023/03/13 15:49:31

[서울=뉴시스]신귀혜 기자 = 지난달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판사 이승한·심준보·김종호)는 '동성결합' 당사자인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피부양자 자격 박탈에 따른 건강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는 법적 부부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동성 커플에게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판결 직후 당사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기쁨을 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사 댓글 등을 통해 쏟아지는 혐오발언이 가장 힘들다"며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판결 당일에도 관련 기사의 댓글창 등에서 소씨 부부, 성소수자 전체를 향하는 혐오 표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의 댓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정서는 '낯섦'이었다.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과는 다르다는 전제가 혐오표현으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성간 사실혼·동성결합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꽤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은 모두 법률적 의미의 가족관계나 부양의무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지적이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상대방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 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 시선을 따라가면, '동성결합' 역시 수많은 인간관계 형태 중 하나로 온전하게 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재판부가 그랬던 것처럼 관계의 실질을 들여다본다면, 이를 이해하는 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낯선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낯섦에서 비롯된 차별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법률상 혼인으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성별이 유일한 차이점인데도, 혼인신고 한 번으로 그 모든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이성 부부들과는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에 성소수자들은 현행법 체계 안에서 우회적으로라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한 시민단체는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혼인·사망·상속 등을 다루는 온라인 법률 강좌를 열었다. 700명 이상이 수강한 것으로 알려졌고,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은 크라우드 펀딩을 거쳐 출간을 앞두고 있다.

단지 낯설다는 이유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이처럼 살아남기 위해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번 판결 역시 '각개전투'의 결과물이다. 소씨는 지난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개별 권리마다 이런 식으로 소송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이 지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다수가 이성간 혼인으로 가족을 꾸리는 세상에서 동성커플 등이 낯선 형태로 간주되는 건 필연적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지적했듯 '낯섦'만을 이유로 한 차별은 이 세상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재판부는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선언하며 성소수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항소한 건보공단, 과거 숙명여대에 똑같이 경쟁해 당당히 합격하고도 재학생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트랜스여성 A씨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손을 내밀기보다 그들의 손을 뿌리치기를 더 많이 선택하는 듯하다. 이미 자리 잡은 차별이 생활 속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유의미한 판결'이라며 법원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법원의 선언은 '낯선 존재들'이 공동체 밖을 맴돌며 각자의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과는 어쩐지 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선언이 판결문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판결문과 현실의 괴리가 해소되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말 것이다.

하급심 법원의 선언으로 첫 단추는 끼워졌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갈 길이 멀다.

미국은 지난 2015년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한 뒤로 2020년 성적 지향에 근거한 해고를 불법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 지난해 '결혼존중법' 상원 통과 등이 이어지며 성소수자 권리가 계속해서 신장되고 있다.

이 외에도 대만, 네덜란드를 비롯한 30여개국에서는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갈 길은 멀고, 싸움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많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손을 모아 내밀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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