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어망에서 고순도 재생 나일론과 플라스틱 생산
어망에 맞는 5㎜ 단위 분쇄기 직접 개발
시리즈 A·시리즈 A 브릿지 투자 유치 성공
LG화학·삼양사·SK에코플랜트 등과 업무협약 체결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해양수도' 부산은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어민들을 품은 이 도시에서 해양환경문제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 중에서 폐어구와 폐어망 등에 수산생물이 걸려 폐사하는 이른바 '유령어업(Ghost fishing)' 문제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손꼽힌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유령어업으로 연간 어업생산량의 10%인 4147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또 수거된 침적(수중) 쓰레기 중 90% 이상이 폐어구이며, 연간 약 2만6000t이 바다에 유실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한 젊은 사업가는 이러한 문제 속에서 미래를 찾았다. 그 주인공은 넷스파의 정택수 대표다. 정 대표가 2020년 10월에 창업한 넷스파는 폐어망에서 재활용 나일론 섬유를 뽑아낸다.
대학 졸업 직후 그는 대기업의 환경안전팀에 취직했었다. 직장생활 3년차 대리로 막 승진했을 무렵 창업이라는 큰 도전에 나섰다.
"환경안전팀은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는 팀이었기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자연스럽게 접했다"며 "그 무렵 의류학을 전공한 뒤 섬유 시험분석원으로 일하던 고등학교 동창이 패션 브랜드 창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그 친구와 함께 친환경 의류 시장에 같이 뛰어들었다"
창업 시장에 발을 들인 정 대표는 동창인 송동학 현 넷스파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함께 '플라스틱사우나'라는 소셜벤처 기업을 만들었다. 이어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 이름에서 따온 친환경 캠핑 웨어 브랜드 '리들리(reedley)'를 출시했다.
이들은 페트병 등을 재생 원료로 활용한 의류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곧 난관에 봉착했다. 그 당시 이들은 친환경 나일론을 활용한 아이템을 기획했지만, 국내에서 친환경 나일론을 생산하는 업체를 구할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유럽에서 폐어망을 활용해 재생 나일론을 생산하는 업체를 찾았지만, 워낙 고가에다 물량이 많지 않아 가져올 수 없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정 대표는 기회를 엿봤다.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한국은 삼면이 바다며, 어업을 많이 하기에 폐어망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에 폐어망 리사이클링 기업이 없었고, 중간재를 받아 생산만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직접 원재료 단계까지 내려가 보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동창과 함께 '그물을 목욕하다'라는 뜻의 '넷스파(NETSPA)'를 만들며 두 번째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국에 바닷가와 항구를 둘러보며 어촌과 폐어망 실태 파악에 나섰다. 폐어망을 재활용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폐어망은 육지로 가져오기는커녕 곧바로 바다에 버려지기 일쑤였고, 그나마 육지로 가져온 폐어망은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수매사업 예산이 금방 소진되면 어촌 빈터에 덩그러니 쌓여 있었다. 폐어망을 폐기물 업체가 수거하는 방안도 있지만 비용이 드는 데다가 소각이나 매립으로 이어져 또 다른 환경파괴로 이어지고 있었다.
위탁업체를 통해 폐어망을 확보해도, 나일론을 추출하는 기술이 관건이었다. 어망은 나일론 섬유와 PP(폴리프로필렌), PE(폴리에틸렌) 섬유가 얽히고 설켜 있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유럽에선 폐어망 배출이 체계적이고, 사람이 직접 꼬인 실을 잘라가며 수작업으로 분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사용되는 어망은 유럽 어망보다 더 얇고 촘촘하게 꼬여 있어 수작업으로 나일론을 불리하기엔 비용과 생산성의 한계가 있었다.
이들은 4개월간 밤낮 없는 연구 끝에 폐어망에서 나일론 소재만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정 대표는 "어망 속 플라스틱 섬유를 조각조각 끊어낸 뒤 이를 분리하는 게 핵심기술이다. 넷스파는 어망에 맞는 5㎜ 단위의 분쇄기를 직접 개발했고, 이를 통해 어망에서 각 원료들을 추출해 고순도 재생 나일론과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10명이 꼬박 하루 동안 수작업을 통해 150㎏의 나일론을 분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넷스파에서 만들어낸 기계를 사용한다면 하나당 하루에 1.5t의 나일론을 폐어망에서 분리할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생산된 나일론의 순도는 95%에 달한다.
이처럼 넷스파는 폐어망을 재활용해 고순도의 원료로 제작한 뒤 판매하는 원료 제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폐어망 '수거-운반-재활용' 가치사슬 구축 등의 용역 사업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됐지만 나날이 환경 이슈가 부각되면서 시장은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넷스파가 생산한 원료들을 석유화학 기업에 납품돼 아웃도어나 스포츠 브랜드의 옷, 전자제품 부품, 자동차 내장재 등으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기술력을 보유한 넷스파는 2021년과 2022년에 시리즈 A(30억원)와 시리즈 A 브릿지(15억원) 투자 유치에 각각 성공했다. 또 ▲SK에코플랜트, 폐어망 재활용 사업 지원 협력 ▲삼양사, 해양쓰레기 재활용 자동차용 소재 공급 계약 ▲부산시-효성티앤씨, 해양폐기물 재활용 촉진·순환경제 체계 구축 업무협약(MOU) 등 다양한 기관·기업과 손을 잡았다.
아울러 넷스파는 올들어 지난 12일 LG화학과 '해양폐기물 재활용을 통한 자원순환 체계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넷스파는 LG화학에 폐어망을 통해 추출한 원료 중 하나인 믹스 플라스틱을 공급할 예정이다.
넷스파는 오는 4월까지 설비안정화를 마치고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설비안정화가 된다면 연간 2400t의 재활용 나일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정 대표는 내다봤다.
정 대표의 최종 목표는 해양폐기물 산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나아가 해양폐기물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사회적 가치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위탁업체가 수거하고 있지만, 향후 사회적 취약계층을 수거·운반에 고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생태계에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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