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9시, 접수는 8시, 접수 대기는 7시반
9시에 바로 진료받으려면 7시반에는 와야
부모들은 울상 "대기 길어 아이도 나도 지쳐"
대한병원협회, 전공의 소아과 지원 단 33명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지난 26일 오전 7시50분께 송파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아직 병원 문이 열리지 않았지만 진료를 기다리는 줄이 이미 길게 늘어섰다. 저마다 아이 손을 잡고 대기 중인 보호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진료를 받기 위해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인내하고 있었다.
오전 8시가 되기까진 10분 남았지만, 이미 12팀이 대기 중이었다.
줄 끝에 서 있던 만 4세 아이의 엄마 정모(34)씨는 "오전 7시45분부터 기다렸다"며 "'초치기'에 실패해서 (진료 시간이) 늦어질까 봐 오픈런했다"고 말했다.
'초치기'는 원격 병원 접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특정 시간에 맞춰 열리는 선착순 접수를 의미한다. 다만 수요가 몰리다보니 접수가 쉽지 않다. 정씨는 "'초치기'에 실패하면 그다음이 바로 오후 진료다. 오전 중엔 진료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만 2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김모(36)씨 또한 "일전에 아이가 알레르기 때문에 아팠는데 기다리다가 (진료가) 너무 늦어졌던 적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병원 문이 열기 전에 미리 왔다"고 전했다.
최근 독감과 장염이 유행하는 가운데 소아청소년과(소아과)는 줄어들면서 이른바 '오픈런(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하다가 뛰어가는 것)'에 나서는 아이와 부모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아청소년과는 워낙 대기가 많다보니 오전 9시께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그날 오전 진료는 물론 오후 진료까지 모두 마감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도봉구의 한 소아청소년과의원 관계자는 "진료는 9시부턴데 접수는 8시부터 한다. 대기(접수)를 대기하려고 사람들이 8시보다 더 일찍 와서 기다린다"며 "7시반부터 와야 9시에는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전 9시께 해당 병원의 대기 인원을 물었더니 "77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소아청소년과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8시30분부터 접수를 시작하는데 매일 10명 정도는 (오픈 전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전 중에 와야 오후에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모들은 소아과 가기가 힘들어 아이 키우기가 한층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한다. 직장을 다니며 만 3세 여아를 키우는 조모(35)씨는 "반차를 쓰고 데려가려고 해도 아침부터 안 오면 진료를 못 본다더라. 게다가 저녁에 문 여는 병원도 거의 없다. 퇴근하고 가면 이미 대기가 끝나 있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도봉구에서 만 1세 아이를 키우는 박모(34)씨는 "(생후) 6개월부터 면역력이 약해져서 자주 아팠다. 그때마다 병원에 오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서 아이도 나도 함께 지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상에서는 소아과 오픈런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공급 부족을 호소하지만, 저출산이 지속되고 있어 당장 공급이 늘어나기도 쉽지 않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 7일까지 전국 67개 수련병원의 내년도 전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결과, 소아청소년과는 정원 191명에 33명만 지원해 지원율이 17%에 그쳤다.
지난 12일에는 급기야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이 잠정적으로 중단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중 의사가 없어 진료과 입원을 중단한 사례는 가천대길병원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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