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재스민 혁명 이후 가장 낮은 수준
심각한 경제난과 정권에 대한 반발 때문
평론가들, "새로 선출된 의회에 대해 기대 낮아"
[서울=뉴시스]조성하 기자 =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의 의회 선거가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하며 다시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운동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알려진 튀니지의 지난 17일 의회 선거 투표율은 11.2%에 그쳤다.
이 같은 투표율은 2011년 재스민 혁명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19년 대통령 선거 참여율인 약 50%에도 훨씬 못 미친 셈이다.
심각한 경제난과 정권에 대한 반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하락 등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론가들은 이런 상황이 민주화 운동 발원지로 알려진 북아프리카의 민주 국가가 독재 국가로 돌아가는 또 다른 단계라고 평가했다.
당초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주도한 개헌으로 의회의 권한은 크게 약화됐다.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과 군 통수권, 판사 임명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정부 인사들을 임명할 권리도 갖게 했다.
이에 주요 정당 상당수는 총선 보이콧을 촉구해왔다. 야권은 이번 총선이 대통령 권한 강화를 위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며 선거를 거부했다.
튀니지의 제1야당인 자유헌법당의 아비르 무시 대표는 낮은 투표율을 두고 튀니지 국민 대다수가 "사이에드의 방침을 거부했다"며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모니카 마크스 뉴욕대 아부다비 중동정치학과 조교수는 이번 선거는 (튀니지 내) 정당이나 시민단체 모두가 보여주기식 의회를 만들기 위한 가짜 선거라고 설명했다. 이제 튀니지에서의 선거는 대통령이 자신의 집권에 합법성을 더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선거는 의회를 재건하기 위한 첫 발이었다. 그러나 의회의 권한을 축소시켜 본질적으론 자문기구 수준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 및 대통령을 해임할 수 없게 되며, 사이에드가 제시하는 법안은 의원들이 제안한 법안보다 우선시 된다.
또 무명의 당선자가 어떤 정치 성향을 가졌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정당의 선거 참여가 금지되면서 유권자가 후보자에 관한 정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선이 확정된 23명에는 사이에드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브라힘 부데르발라 전 튀니지 변호사협회 회장이 포함됐다. 여성 3명도 당선자 명단에 들어갔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 국가 반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경제가 악화하며 생활고로 인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큰 표차로 당선된 헌법학자 출신의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정치권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의회 기능을 정지했다. 의회가 반기를 들자 해산 명령을 내렸고, 대통령 임기를 마음껏 연장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튀니지인들은 사이에드의 집권이 부패척결과 경제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랐다.
평론가들은 새로 선출된 의회에 대해 낮은 기대를 보였다. 의제를 설정할 조직화된 정당의 부족으로 인해 의회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며, 모든 법안은 사이에드의 주도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선거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아프리카 49개국과 함께 정상회의를 열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치러졌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워싱턴포스트(WP) 편집위원회와의 만남을 가져 자신의 권력 장악에 대한 미국의 비판을 일축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자신이 독재자라는 느낌을 주는 "가짜 뉴스"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정적을 지원하는 미확인 "외국 세력"을 지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선거에 대해 보인 낙관적 반응에 대해 일부 비판을 받았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선거를 두고 "국가의 민주주의 궤적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마크스 교수는 이러한 미국의 성명이 "가짜 투표를 민주주의 복귀를 위한 '필수 단계'라고 부르니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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