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제3회 제주비엔날레 호평 "제주비엔날레 답다"
16개국 55명팀 참여...도립미술관~가파도 AIR등 6곳서 진행
박남희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주제 자연공동체 지구 사유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삶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일은 조용히 일어난다."
제주비엔날레에 무지개가 떴다. 존폐의 갈림길에서 5년 만에 살아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제1회 개최 이후 졸속 추진, 내부 갈등 논란 진통 속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추진 도중 무산됐다.
제주비엔날레는 기형적이다. 타비엔날레와 달리 독립된 조직위원회도 없다. 주최하는 제주도립미술관은 인력과 예산문제로 버겁다. 미술인·도민 등 투표까지 실시해 폐지 위기를 딛고 살아났다. 올해는 18.5억이 투입됐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제3회로 다시 시작된 제주비엔날레는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대한민국 비엔날레 풍년(16개)속 "비엔날레의 답을 제주에서 찾았다"는 호평도 나왔다. 예술감독 인맥 자랑이거나 작가들의 잔치, 난해하고 허세 들린 미술행사라는 메아리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다.
16일 개막한 16개국 55명(팀)의 작가의 165점이 제주 땅 6곳에 펼쳐졌다. 주제관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2곳, 위성 전시관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4곳이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을 주제로 뭉친 작가들은 제주의 신화와 신비, 자연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을 전한다. 1박2일 코스로 관람한 현장은 작지만 알차다. 지역서 여는 '국제 비엔날레 정체성'을 찾은 분위기다. 자연과 공생한 박남희(52)예술감독의 영리한 전략이 통했다.
◆박남희 예술감독의 영리함...인간과 자연 공생의 법칙
"자연은 곧 우주다."
'2022 제주 비엔날레’는 박남희 예술감독을 선임한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생명은 우주 본연의 창조성", 우주적 자연 공명’을 주창하는 박 감독의 사고가 이번 전시를 관통한다. ‘우주의 별들은 줄지어 펼쳐져 있고’,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가 자연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지구 공동체'라는 개념은 전시 작가들 뿐만 아니라 관람자까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지난 3월 선임 된 후 쏜살같은 '시간의 틈'을 넘나들었다. 제주비엔날레의 미션은 '올해 안에 개막'이었다. 대개 봄 여름에 펼치는 비엔날레와 달리 겨울을 맞는 11월 개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6개국 작가들 섭외는 그간 쌓아온 경험이 밑천이 됐다. 동시대 사회적 현상들을 현대미술로 성찰하며 담론화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을 제주도의 자연 지형과 버무렸다. 알아먹지도 못하는 현대미술, 그들만의 잔치의 비엔날레를 제주도민의 문화향유 확산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자연과 공생'으로 풀어냈다.
6곳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어떤 장소에서 만나든 현대미술의 사치스럽고 허망한, 모호함과 막연함을 벗고 있다. 땅이라는 자연 속에서 호흡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관계적 행위를 제주의 바람과 하늘,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제주의 독특한 자연과 역사·문화 등 지역적 특성이 비엔날레의 중심축으로 작동된다.
박남희 예술감독은 “지구적 전염병과 기후 위기 등의 상황 속에서 전 지구적 공생의 방향은 자연의 순환성과 생동성의 회복”이라며 "공존과 조화 등을 다룬 제주비엔날레 출품작들을 통해 삶의 태도, 예술적 실천도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①주제관, 제주도립미술관:자연 주제 밀도 있는 작업 펼쳐온 국내외 33명 작가 회화 설치 영상 작품
김수자의 신작 무지개빛 설치 작품 '호흡'을 품은 미술관 로비를 시작으로 거대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압도한다. 최선 작가가 해녀들의 숨을 불어 만든 9m 대작 '나비', 파도 영상과 함께 선보인 강요배의 세로 6m의 '폭포 속으로'는 제주의 물과 바람, 자연의 장엄함을 드러내고 있다. 강미선의 '지혜의 숲 2 - 금강경' 공간은 제주 스님들의 '필람'전시로 등극했다. 불교의 공(空) 사상이 깃든 지혜의 경전인 '금강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명상적 공간을 구현했다.
제주도립미술관에는 미술관 입구 진입로부터, 전체 전시실, 건축물 뒤편까지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강승철 최병훈, 갈라 포라스 킴, 박종갑 정보영, 문경원&전준호, 이소요, 김기라, 레이첼 로즈, 자디에 사 등 38명의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30년 넘게 인종, 정체성, 탈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심해 온 흑인 문화운동의 중심에 있는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가나)의 '트로피코스',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가구를 만드는 아트 퍼니처 예술가 최병훈의 '태초의 잔상 2022' 등도 눈길을 받고 있다.
◆②제주현대미술관:김기대 바실리카~강이연~심승욱~윤석남~황수연~앤디휴즈
미술관 들어가기전 김기대의 '바실리카'는 꼭 보고 가야 한다. 마치 중세 교회 뼈대처럼 보이는 건물은 비닐하우스에서 착안했다. 미술관 공터에 세워져 작품인지 모를 정도다. 제주의 빈집과 쓰레기 문제를 공간 작품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폐허같은 건물안에는 배추 고추 파 등 작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구조물 출구는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자신을 낮춘다면 비로소 밖으로 나가 자연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제주의 환경에 대해 환기시킨다.
제주현대미술관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Quayola, 이탈리아)의 기계의 눈으로 본 자연을 주제로 한 '프롬나드(Promenade)' 작업을 필두로 종이와 연필로 물성과 형태를 구축한 조각한 황수연의 '큰머리 파도', 제주의 자연과 역사 속의 인물 김만덕의 오마주가 드러나는 윤석남과 박능생의 작업이 흥미를 더한다.
◆③위성전시관 이웃집미술관:검은 퇴비에 굴복하라
제주현대미술관 골목에 자리한 미술관옆집 제주는 자연 공동체 삶의 태도가 예술공간으로 이어진 독특한 장소로 비엔날레 위성전시관이다. 제주도 전통가옥의 형태를 살려 안거리(본채)와 밖거리(별채), 귤 창고, 작은 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레지던스를 토대로 장소 전체가 작품의 공간이다.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가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삶의 순환과 공유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다. 관람객은 공간에 방문하여 작가가 경험한 것들을 함께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난로가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④위성전시관 가파도 AiR:해양쓰레기 경각심 홍이현숙~심승욱 '검은 괴물' 환영
위성 전시관으로서 가파도의 지형과 생태를 가득 느낄 수 있는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와 글라스하우스, 섬 안의 곳곳에서 비엔날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동식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해양쓰레기에 대한 경각을 불러일으키는 홍이현숙의 설치는 냄새(악취)까지작품으로 변환되고, 가파도의 폐가에 프레스코화를 그린 아그네스 갈리오토(Agnese Galiotto, 이탈리아)의 '초록 동굴'은 폐가를 작품처럼 변신시켜 으스스하면서도 공공재로서의 미술품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가파도 아티스트 레지던스에는 심승욱의 플라스틱 비닐수지로 만든 검은 설치 작품이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시멘트 건축물 구조에 매달린 검은 괴물처럼 보이는 작품은 가파도의 강한 바람에 저항하는듯 한 몸부림으로도 보이며 환영의 틈을 보여준다.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 가파도에 자리한 가파도 AiR는 2018년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2021년부터제주문화예술재단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국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가파도는 예능 방송 여파로 '가파도 짬뽕집' 투어 관광객이 많다.
◆⑤제주국제평화센터:준초이 '해녀', 해녀복 이승수 '불턱', 노석미 '바다의 앞모습', 이이남 ‘탐라순력도’ 미디어작업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시설이다. 자연 공동체 지구를 위한 평화와 상생의 기원의 장소로 비엔날레 위성 전시관 중 하나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후 2006년 제주국제평화센터가 상징적인 시설물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에 건립됐다. '평회의 섬' 상징 전시장답게 제주의 특장을 똑 떨어지게 선보인다. 준초이가 1년간 우도에서 해녀들의 삶과 자취를 담아낸 '해녀' 흑백 사진 시리즈가 맞이한다. 해녀복과 오리발로 만든 이승수의 ('불턱')원형 설치작품은 마치 바닷속처럼 연출됐다. 불턱은 위험한 물속작업을 대비하여 후배를 가르치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던 제주 해녀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그 옆에는 1년 내내 제주의 바다를 그렸던 노석미의 '바다의 앞모습'이 순환하는 계절을 전하고, ‘탐라순력도’를 재해석한 이이남의 미디어작업은 자연을 하나로 보는 동양의 세계관을 전한다.
◆⑥삼성혈:제주 태고의 신비를 예찬한 박지혜~신예선~팅통창
제주도 개벽 신화의 장소인 '삼성혈'은 자연 공동체로서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위성 전시관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인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 구멍을 말한다.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해 경배하듯 고개를 숙여 신비한 자태를 하고 있다. 1698년 삼성전과 삼성문, 1827년 전사청, 1849년 숭보당, 1971년 건시문 등이 건립되었다. 숭보당과 전사청,야외 숲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지혜가 대형 화면에 담은 '세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 작품이 초록숲을 경배하듯 신비감을 선사하고 명주실을 하나 하나 붙여 나무를 이은 신예선의 '움직이는 정원'은 수백년을 살아낸 나무들의 시간의 흐름을 홀로그램처럼 보여준다. 빛에 따라 그림자까지 수용하는 명주실 작품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이로움을 전한다. 숭보당에서는 자연으로부터 신화로 연결된 세계를 현대무용으로 담아낸 팅통창(Ting tong Chang, 대만)의 '푸른 바다 여인들' 영상이 상영된다. '삼성혈' 전시는 비행기 타기전 꼭 보기를 강추한다. 제주비엔날레의 시작과 끝이 담긴 이 전시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푸른 나무 사이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그 느낌을 배가시키는 건 작품들이 한몫한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바람, 돌, 사람 많은 제주를 '생태 미술관'으로 재발견하게 한다. 땅에 발을 딛고 걷고 숨을 크게 들이켜 호흡하며 '다가서는 땅'으로 찾아다니며 자연과 호응하며 공명하길 바라는 주제 의식 덕분이다. 셔틀버스가 없는 이유다. 행사는 2023년 2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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