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변하자"…인간중시·기술중시 경영철학 귀감
사회공헌·민간외교에도 힘써…"한국 역사의 선지자" 평가
삼성이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고(故)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삼성 신경영' 선언 이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7일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소집해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삼성은 1997년 한국 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IMF 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1987년 회장에 오른 이래 삼성의 매출액은 취임 당시 10조원에서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다.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증가했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도 2021년 746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 1992년 이후 20년간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D램을 비롯해, 삼성이 만드는 제품 중 20개 품목이 월드베스트 상품이다.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고 강조한 그의 경영철학은 여전히 귀감이 되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으로 요약된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내용도 포함한다.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
이건희 회장의 이런 소신은 삼성의 '경영이념'에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이 회장의 인재 사랑은 유별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재 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데 힘썼다.
그는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또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인재 육성과 함께 이건희 회장은 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 기술 인력을 중용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기술적 저변을 확대했다.
산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1974년 반도체 사업에 착수한 것도 인재·기술 중시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공헌을 경영의 한 축으로 삼은 것도 당시에는 이례적이었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도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삼성사회봉사단을 1994년 출범시킨 이래, 조직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맡아 크게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1997년부터 올림픽 TOP(톱)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그의 꾸준한 스포츠 외교가 일조했다는 평이다.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사업가’를 넘어 '철학자'이자 '사상가', '예술가'로 그를 추모했다.
이우환 화백은 문예지 월간문학 2021년 3월호에 실린 '거인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추모글에서 "내겐 이건희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哲人)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됐다"고 회고했다.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도 이건희 회장의 생전 기부 사연에 대해 "고인은 기업인이라기보다 철학자였다"고 밝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정신적 몸살을 앓을 때까지 고민하고 분석하라고 강조했던 고인에 대해 "성공적 결정을 내린 생각중독자"라고 정의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 "'21세기 글로벌 초일류기업'의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비전가"라고 평했다.
외신들도 지난 2020년 10월 당시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삼성을 혁신기업으로 만든 선구자"(로이터), "한국을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경영자"(NHK), "삼성그룹 중흥의 시조"(닛케이)라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재계 관계자는 "고 이건희 회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한국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끈 '대한민국 역사의 비저너리(선지자·Visionary)'"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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