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회화에서 ‘감식(鑑識)’이란 작품 내면의 세계를 헤아려 보는 일이다. 화법과 구도, 세밀한 묘선(描線), 창작기법 등의 판별(判別)은 감정에서 중요한 요소이므로, 이를 위한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주관적 행위인 감상과는 차이가 있다. 감정은 펼쳐진 화면에서 소재의 표현과 안정감, 비례, 적절한 여백, 화법 구성, 필법, 화격(畫格), 창의성 등에 대한 세밀한 확인 과정을 거친 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평가를 내린다.”
고미술 전문가인 우림화랑 임명석 대표가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녹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감정과 감상의 차이'(아트프라이스)를 출간했다. 서화감정과 문방사우를 한 권으로 엮은 책으로 고미술 애호가들에 '감정' 혜안의 결실을 전한다.
저자는 2013년 '고서화 감정과 나의 발자취를 낸 바 있다. 1986년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 감정위원, 2015년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장, 2018년 (주)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서화감정(書畵鑑定)의 기초에서부터 역사, 경험과 미감을 통해 체득하는 안목의 문제까지 담아낸 책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서화가들의 감식과 화론, 서화 문화의 향유와 위작, 일제강점기의 미술시 장 등을 넓고 깊게 들여다본다.
“문인사회에서 한지는 자신의 시상(詩想)을 남기고자 하는 글과 그림으로 펼쳐지는 절대적인 여백이다. 그런데 종이가 귀하고,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선비들은 종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지은 시에서도 종이 사랑이 확인된다. 귀한 종이를 얻었을 때의 기쁨과 종이의 질감에 대한 소회(所懷), 그리고 종이를 향한 마음을 시로 승화시킨 덕분에, 선비들의 종이 사랑, 종이 예찬을 다시 보게 한다.” (전통한지, p.198)
“기원전에 만들어진 붓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고대 갑골문자의 형태로 보면, 갑골문자의 출현 시기와 붓을 제작한 시기가 서로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또 처음에는 가느다란 나무 꼬챙이 같은 원시적인 서사(書寫) 도구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에 만든 붓을 보면 단단하고 강한 나무로 붓대를 제작한 후, 이 나무 붓대에 검은 칠(옷칠)을 입혔는데, 이는 보존을 위한 조치로 생각된다.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대에도 단단한 나무에 옻칠을 했다. 붓대 양쪽에서 털을 끼워 넣을 수 있고, 중앙에 고리를 꿰어 매달 수 있도록 구멍까지 뚫어놓았다.” (붓, p.227)
저자는 전통 한지의 유래와 우수성, 붓의 탄생과 재료, 먹의 기원과 제작과정, 벼루의 시원과 명연(名硯), 재료와 산지 등을 이와 관련된 한시(漢詩)나 일화까지도 함께 소개한다. 중국과 우리나라 명망가들의 저서에서 찾아본, 열렬한 문방사우 사랑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묵향이 깃든 문화의 정수였음을 재인식하게 한다.
"이 책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결실"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현재 국내 출판계에 서화감정과 문방사우 관련서는 희귀하다. 예전에 간간이 나온 책들도 이미 절판되거나 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화감정과 문방사우 두 부문을 아우르며 종합적인 이해를 돕게 하는 이 책은 고미술 애호가들에 서화 안목과 '감정과 감상'의 빈 칸을 메워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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