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아역에서…데뷔 20주년 앞둔 한지민의 뚝심

기사등록 2022/10/09 09:19:37

첫 주연작 '좋은 사람' 촬영 때 "매일 울어"

로코물만 들어와 슬럼프 겪기도

첫 영화 '청연', 배우 직업으로 삼은 계기

'미쓰백', 연기인생 전환점 "큰 용기 줘"

한지민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 최지윤 기자 = 배우 한지민(40)은 20여 년간 활동하며 묵묵히 대중 곁을 지켰다. 드라마 '올인'(2003)에서 송혜교(41) 아역으로 데뷔, 19년간 사극, 로맨틱 코미디, 멜로 등 다양한 장르로 연기 폭을 넓혔다. 원래 배우가 꿈이 아니었던 만큼, 시행착오를 겪고 슬럼프에 빠진 순간도 있었다.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2018),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2022) 등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도 전달했지만, "의도한 건 아니"라며 "대중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작품밖에 없는 것 같다. 꾸준히 연기하고 싶다"고 바랐다.

한지민은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9회 부산영화제(BIFF)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하우스에서 "초반에 데뷔하고 나서는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기회가 오면 했다"며 "중간에 나만의 슬럼프도 있었고, 역할에 한계도 느꼈고 새로운 걸 찾는 과정도 있었다. 매년 열심히 하다 보니 19년이 흐른 것 같다"고 돌아봤다.

"어릴 때 꿈이 배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길거리 캐스팅이 유행이었다. 잡지·TV광고 모델로 시작, 올인에서 송혜교 선배의 어린 시절로 데뷔했다. 실제로 한 살 차이인데,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한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오디션에 임했는데, 난 무지하고 욕심이 없다보니 긴장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인 것 같다. 2회 분량 나왔는데, 정말 많이 연습해 자다가도 대사를 할 정도였다."

한지민은 2003년 드라마 '좋은 사람'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우연한 기회에 미니시리즈  주인공이 덜컥 됐다. 연습도 안 돼 있었는데 과분한 역이 와서 (상대역인) 신하균 선배한테 죄송한 마음이 컸다. 성격상 민폐 끼치는 걸 싫어했다"며 "모든 스태프가 기다리고 나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하는게 싫었다. 신인 시절 감독님이 무섭게 하고, 매일 집에 와서 울고 '그만 해야겠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 때 '대장금'(2003~2004)이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이영애 선배 친구 역이 들어왔다. 주인공이 아니라서 좋았다"며 "현장에서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이영애 선배 말투도 따라 해보고, 카메라, 조명 등이 어디서 있는지 조금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사흘째인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픈토크 행사에 참석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의 배우 한지민이 팬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2022.10.07. yulnetphoto@newsis.com

첫 영화 '청연'(감독 윤종찬·2005)은 '배우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는 계기가 됐다. 장진영(1972~2009), 김주혁(1972~2017)과 함께 했다며 "드라마는 지금은 나아졌지만, 일주일 내내 씻을 새도 없이 촬영했다. 영화는 한 컷 한 컷 정성들여 찍었다. 감독님이 욕심내고 섬세하고 디렉션을 해줬다"고 짚었다. 특히 "진영 선배한테 모리스 부호로 통신하는 신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해냈다'는 쾌감이 들었다"며 "그 때 나도 뭔가 계속 해본다면 이런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더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를 경험한 뒤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은 더욱 커졌다. "안타깝게도 영화의 연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상대적으로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많이 했다. 늘 영화에 갈증이 있었고, 차근차근 같이 만들고 싶었다. 그래도 청연이 준 기억 때문에 같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는 시청자 반응이 살갑게 다가오지 않느냐. 처음에는 나 혼자 욕심을 채우고 싶었다면, 점점 대중들이 피드백을 줬다"며 "''부활'(2005)보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경성 스캔들'(2007) 보고 팬 됐어요'라고 하더라. 그냥 막연히 나만 잘 해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는 누군가에게 감정을 선물해주는 직업이구나' 느꼈다. 드라마를 하면서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물론 작품을 거듭할수록 연기의 성장을 빨리 느끼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20대 초반에는 '30대에 굉장히 많은 감정의 경험을 하고 지금보다 잘 해낼 수 있겠지' 싶었다. 작품은 시대적은 분위기를 반영, 어떤게 유행하면 비슷한 소재가 쏟아졌다"며 "아무래도 20~30대 초반까지는 들어오는 캐릭터가 대부분 로맨틱 코미디였다. 어느 날 어떤 신을 촬영하는데, 익숙하고 많이 해본 느낌이었다. 로코는 이야기 흐름이 대부분 비슷하다. '내가 왜이렇게 비슷한 걸 하고 있지?'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2015년에만 해도 극본을 봤자마자 드라마 찍어내고, 대사 외울 시간조차 부족했다"며 "내가 감정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시청자를 이해시킬까?' 싶었다. 배우로서 슬럼프였다"고 했다.

"30대 초반 지나고 이런게 와서 작품을 좀 쉬고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2016)을 했다. 당시에는 여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캐릭터가 많지 않았다.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하지만, 영화에서도 꼭 주인공을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다양성을 찾으면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된다'고 폭 넓고 봤다. '장수상회'(감독 강제규·2015) '그것만의 내세상'(감독 최성현·2018) 등 규모가 작아도 다른 것을 하는게 재미있었다."
[부산=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배우 신하균과 한지민이 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2022.10.05. pak7130@newsis.com

미쓰백은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새벽에 혼자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바로 회사에 '하고 싶다'고 전화하고 싶었다. 어느 동네에 찾아가서 벌어진 일을 보고있는 느낌이었다"며 "사회사업학과를 나와서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내용이었다. 관련 뉴스만 보면 화가 났고, '꼭 세상에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없이 무턱대고 시작했다. 찍으면서 '무를 수 없나요' '내가 해도 괜찮나요?'라고 했지만, 시작은 불타올랐다"고 귀띔했다. "다 내가 착한 줄 안다"면서 "착한 역을 너무 많이 주는데, 미쓰백에서 담배 피는 신은 속이 시원했다"며 웃었다.

"2016년 촬영했는데 기다려도 개봉을 안 하더라. 스태프들한테 너무 죄송했다. 배급사가 생기고 개봉했는데, 2018년 10월 미쓰백을 들고 BIFF에 와 꿈 같은 시간이었다. 막상 개봉한다고 하니 너무 무서웠다. '욕 먹어도 달게 받아야지'라고 생각, 좋은 반응이 나올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또 새로운 역에 도전할 때 망설이는 시기가 온다면, 미쓰백으로 인해 더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원래 '걱정충'인데, 미쓰백 촬영하면 성격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좀 거침없어 진 것 같다. 이제 큰 산을 마주해도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한지민은 티빙 '욘더'가 BIFF '온 스크린' 섹션에 초청 돼 부산을 찾았다. 이준익 감독의 첫 드라마로 14일 공개할 예정이다. '재현'(신하균)이 세상을 떠난 부인 '이후'(한지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미지의 공간 욘더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후 대사 중에 곱씹으면서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이 많다"며 "스크린에서 볼 때는 몰입도가 컸는데, OTT 작품인 만큼 핸드폰으로 보거나, 설거지, 청소하면서 보면 '하나도 재미없지 않을까?' 걱정됐다. 총 6부작인데 여러분 마음에 다 담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차기작은 김석윤 감독의 드라마 '힙하게'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드라마 '눈이 부시게'(22019)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됐다. 첫 촬영을 마쳤다며 "김석윤·이준익 감독은 정말 애정하는 분이다. 예전부터 '나랑 작품 재미있게 해보자'고 했는데, 나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욘더와 달리 가볍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김 감독님이 원래 KBS 예능국 출신이고, 유재석씨한테 메뚜기 탈을 씌우신 분이다. 본인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담았고 제목처럼 힙하다"고 귀띔했다.

한지민은 일상생활에서 '비움'을 잘 하려고 하는 편이다. 몇 개월간 작품을 찍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공허한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인간 한지민으로의 삶을 많이 쌓아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일하는 만큼, 일상에서 불편함도 있지만 "그게 두려워서 사람 한지민의 삶을 포기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데뷔 후 한번도 팬미팅을 연 적이 없는데, 코로나19 확산 후 오랜만에 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한 듯 보였다. "울컥하는 마음을 계속 참았다. 벅차고 소중한 게 많아졌다"며 눈물을 보였다.

"먼 친척 중 다운증후군을 앓는 조카가 있다. 가까운 친척 조카 중에서는 자폐와 발달장애가 있다. 얼마 전 우리들 블루스를 함께 한 (정)은혜씨 전시회에 갔다왔다. 발달장애아를 돌보는 특수교사님이 '사회가 이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다. 정말 감사하다'고 하더라. 은혜씨 어머니도 마냥 좋다가 아니라, '너무 이상해요. 구름 위를 걸어다니는 느낌이에요'라고 하더라. 이전에는 은혜씨 얼굴을 보고 손가락질 했다면, 이제는 귀엽다며 '사진 찍어달라'고 한다더라. 세상이 바뀐 것 같다. '작품의 힘이 정말 크구나'라고 느꼈고, 가장 보람 찬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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