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굿잡'에서 재벌·탐정 연기
소녀시대와 유리와 두번째 호흡 최고
"하이킥 후 대표작 찾기 위해 노력 중"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배우 정일우(35)는 데뷔작인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6년 간 연기하며 계속 언급 돼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법도한데, "대표작이 있는 건 감사한 일"이라며 "그 덕분에 지금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데뷔했을 때부터 주목 받았지만, 그해 교통사고를 당해 뇌동맥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삶의 큰 변화를 겪는 계기가 됐다. 이후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일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2018년 말 사회복무요원 해제 후 작품활동을 쉬지 않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뇌동맥류) 추적검사를 하고 있다. 액션을 하거나 뛰면 두통이 와서 조금 걱정이긴 하다. 길 걷다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데, 두려워하고 그것만 부여잡고 살 수는 없다. 아프고 나서 한 달 정도 집밖에 안 나갔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는데 조심하면 되지 않나' 싶더라. 2년 가까이 작품이 안 들어올 때도 있었기에 간절함을 안다. '이 작품 안 되면 어쩔까?' 걱정하기 보다 '캐릭터를 어떻게 잘 소화할까?'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다. 찾아줘서 감사하고 '열일'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특히 ENA 수목극 '굿잡'은 "영혼을 갈아넣었다"고 할 정도로 애착이 큰 작품이다. 총 12부작인 이 드라마는 재벌과 탐정 이중생활을 오가는 '은선우'(정일우)와 초시력을 가진 '돈세라'(권유리)의 로맨스다. 지난해 10월부터 1년 여 간 준비·촬영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정일우가 코로나19에 감염, 첫 촬영이 2주 정도 미뤄졌다.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 인대가 끊어져 3주 간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체감상으로 총 30부작 한 것 같다. 현장에서 PD님과 대사와 상황을 바꿔서 촬영한 부분이 많았다. 애드리브도 많이 했다"면서 "배우들과 케미도 좋았고, 이 작품은 정말 굿잡이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오랫동안 군대 얘기하는 것처럼 계속 끄집어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매회 에피소드가 다양해 고민을 엄청 했다. 노인 분장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처럼 보였으면 했다. 카지노 갈 때는 수염 붙이고 아메리칸 스타일을 했다"며 "매회 변장했는데, 약간 대학교 때 졸업작품 찍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PD님도 잘 받아줘서 함께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었다. 이전에는 극본만 보고 연기했다면, 이번엔 서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부분이 컸다"고 설명했다. "노인 분장을 4번 정도 했는데, 기본 4시간 정도 걸린다. 숨 쉬기도 힘들고, 두 번 다시는 안 하고 싶다"면서 "원래 여장을 해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SNL 코리아'에서 여장을 해보고 자신감을 얻어서 한 번 더 도전할까 했는데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유리씨랑 작품 한다고 했을 때 걱정도 했다. 보쌈이 워낙 많은 사랑을 받았고, 사극과 현대극은 큰 차이가 있지 않느냐"면서 "'현대극에서도 좋은 케미를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촬영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안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만나서 극본 회의를 하고, 작년부터 그런 시간을 가져서 더 끈끈해졌다"고 강조했다.
유리와 로맨스 호흡도 "훨씬 편했다"며 "보쌈에서는 키스신이 없었다. PD님이 빨리 키스신이 나와야 된다고 하더라. 예쁘게 찍기 위해 현장에서 동선도 여러 번 맞춰봤다. PD님이 무릎에 앉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림이 예쁘게 담겼다. 유리가 '오빠 이럴 때 손 잡아줘야 돼'라며 리드를 잘 해주더라. 굉장히 긍정적이고 연기할 때 적극적이다.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의 욕심도 있고 합이 잘 맞았다"고 했다.
굿잡은 최고 시청률 3.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까지 찍었다. 케이블채널 드라마 치고 높은 기록이지만, 전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17.5%에 종방한 만큼 부담도 컸을 터다. 오히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일단 ENA 채널 인지도가 굉장히 올라갔고, 주위에서 '굿잡 하는구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우영우 덕분"이라며 "같이 시간대 드라마는 조금 경계되고 생각 안 할 수 없었지만, 우영우가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시청률 3%만 넘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전작이 아무리 잘 나와도 이어 받지 못해 '제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3% 넘고 수목극 1위도 해 만족한다"며 "이제 채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쌈을 선택했을 때도 주위에서 MBN 드라마를 많이 안 봐서 걱정했는데, 시청률이 10% 가까이 나왔다. OTT도 생겼고, 작품만 잘 나오고 입소문만 나면 어디서 방송하든 크게 상관없다. 요즘 시대관이 많이 바뀐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정일우는 다음달 일본에서 팬미팅을 열 예정이다. 11월 영화 '고속도로 가족'(감독 이상문) 개봉도 앞두고 있다. 다음달 5일 개막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 돼 관객들을 미리 만날 예정이다. 정일우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을 맡았다. 이번 영화에선 많은 변화를 줬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하이킥 이후부터 '같은 캐릭터는 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일우가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지만, 또 다른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털어놨다.
"평소 쉴 때는 많이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녀왔는데, 40㎞ 정도 걸으면 아무 생각이 안 든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자유로움, 편안함을 느낀다. 뇌동맥류를 않고 난 뒤 그곳에 갔고,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20대 때는 더 깨지고 힘들어야 되지 않을까. 일하면서 많이 아파하고 배신도 당하고 상처도 받으면서 단단해졌다. 20대에 더 많은 작품을 하고 경험을 쌓았다면 '지금 더 좋은 배우가 돼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30대가 돼서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데, '40대에는 조금 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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