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혈족 6→4촌·인척 4→3촌' 친족 범위 좁히기로
60개 대기업집단 친족 수 8938→4515명 감소
SM그룹 등 특수관계인에 사실혼 배우자 포함
김범석 쿠팡 의장 내년 동일인 지정 피해갈 듯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정부가 규제 대상이 되는 재벌 총수의 친족을 절반 가까이 줄여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대신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있는 배우자에게 자녀가 있는 경우 친족 범위에 포함한다.
한국계 외국인을 대기업 총수로 지정하려던 계획은 재검토에 들어간다. 미국 등 주요국과의 통상 마찰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11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0일 밝혔다.
◆재벌총수 친족 범위 좁히기로…사실혼 배우자는 포함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총수)을 기점으로 친족, 계열사 등 일정한 범위 안에서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을 정하고 있다. 사실상 동일인이 기업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규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해당 기업은 대규모 내부 거래 등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긴다. 또한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된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특수관계인 등에게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이를 거부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할 경우 제재를 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집단에 주어지는 이러한 의무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국민 인식에 비해 친족 범위가 넓고 핵가족 보편화, 호주제 폐지 등으로 이들을 모두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시행령에서는 특수관계인에 포함되는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혈족 6촌, 인척 4촌까지 규정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은 동일인과 친족, 계열사·비영리법인 및 그 임원 등 동일인 관련자를 의미한다.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 범위를 혈족 4촌, 인척 3촌까지로 축소했다.
혈족 5~6촌과 인척 4촌은 동일인 측 회사의 주식을 1% 이상 보유하거나, 동일인 또는 동일인 측 회사와 채무보증·자금대차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친족 범위에 포함하기로 했다.
이를 적용하면 현재 대기업집단 친족 수는 절반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총수가 있는 60개 집단의 친족 수는 8938명이며,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4515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다만 계열사 수는 거의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사실혼 배우자도 동일인 관련자로 명시했다. 단, 법적 안정성과 실효성을 위해 법률상 친생자 관계가 성립된 자녀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동일인 관련자로 분류된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사실혼 배우자가 계열사 주요 주주로서 동일인의 지배력을 보조하고 있는 경우에도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서 제외돼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었다"며 "법이나 국세기본법 등 주요 법령에서는 사실혼 배우자를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일부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 구성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SM그룹의 경우 사실혼 배우자가 주요 계열사 지분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대표적으로 바뀌는 부분이 될 것"이라며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동거인으로 알려진) 김모 씨가 티앤씨(T&C)재단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령 개정과 관련 없이 동일인 관련자 범위에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총수 지정 계획 무산…김범석 쿠팡 의장에 눈길
당초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는 외국인 총수 지정 요건이 담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가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전에 열린 실무회의에서 외국인의 동일인 지정 문제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부위원장은 "그간 공정위는 연구용역 등을 통해 통상 마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관계부처와 사전 협의를 실시해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통상당국은 이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며 "정부 내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에 추진 방안과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의장도 내년 5월1일 동일인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유 부위원장은 "시행령 개정 작업에 6개월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내년 지정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 편입 규제 완화…"과도한 규제 개선"
앞으로 사외이사가 지배하는 회사는 원칙적으로 계열사 범위에서 제외된다.
다만 해당 사외이사가 동일인 측 계열사 지분 3% 이상을 보유하거나, 임원 선임 이후에 회사를 지배하는 등 임원독립경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열사에 편입하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대기업집단 측에서 사외이사를 영입하면 지배 회사도 기업집단에 자동 편입돼왔다. 동일인 관련자에 임원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신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임원독립경영신청을 통해 사후적으로 계열사에서 제외했다.
이런 규제는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 섭외를 제한해왔다. 대기업집단 규제를 받게 되면 각종 자료 제출과 공시 의무 등을 부담하게 되고, 중소·벤처기업에 주어지는 혜택도 사라지는 탓이다.
임원독립경영 요건 가운데 거래액 판단 시점도 변경된다.
현재 임원독립경영 신청을 통해 계열사에서 제외되려면 기업집단과 임원 상호 간 매출·매입 의존도가 50% 미만이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 거래액을 산정할 때 임원독립경영 신청일의 '직전 1년간' 거래액을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는 재무제표상 결산액과 달라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임원독립경영 신청일이 속한 사업연도의 '직접 사업연도'를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중소·벤처기업 대기업집단 계열 편입 유예 제도도 개선된다.
현행 시행령은 대기업이 투자한 일정 중소·벤처기업의 대기업집단 편입을 7~10년간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5% 이상'인 중소기업은 계열 편입 유예 대상이었다. 앞으로는 이 비중이 '3% 이상'으로 완화된다.
아울러 해당 중소·벤처기업 자회사도 함께 계열 편입을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을 명확히 하고, 대기업집단 계열 편입 요건을 충족한 이후 1년 내까지 유예 신청을 할 수 있게 했다.
공정위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경제계·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 관계부처 등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이후에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처 개정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윤 부위원장은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친족 등 특수관계인과 계열사 범위가 합리적으로 개편돼 과도한 기업 부담을 개선하면서 제도의 실효성도 제고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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