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낙농가, '차등가격제' 놓고 갈등
무더위에 젖소 원유 생산량까지 감소
유업계 "원유 수급 불안정" 우려 고조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우윳값을 놓고 정부와 낙농업계간 갈등이 커지며 원유 가격 조정일인 8월1일이 됐지만 새 원유 가격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낙농업계에서는 우유 납품 거부까지 거론하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우유를 시작으로 우유 관련 제품 가격이 잇따라 오르는 우유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낙농업계와 유업계 간 갈등의 핵심은 정부가 추진하는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에 있다.
정부는 2013년부터 낙농가의 생산비에 따라 원유 가격을 책정하는 현행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원유 가격을 결정했으나, 이 제도가 낙농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란 원유를 흰 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와 치즈 등 유제품을 만드는 가공유로 나누고 음용유의 가격은 유지하고 가공유 가격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음용유의 가격은 현재처럼 리터당 1100원을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을 800원대로 낮춰 유제품에 국산 사용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다. 국내 우유 소비 시장이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음용유 수요가 줄고 가공유 수요가 증가하는 데 따른 개편안이다.
그러나 낙농가에서는 이렇게 되면 농가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며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또 국제 곡물 가격 인상으로 사료 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원유 가격을 내리면 생산비도 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낙농협회는 정부가 제도 개편을 고수하면 우유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정부 정책에 찬성하는 유가공 업체 측은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젖소의 생산량마저 감소해 원유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낙농가의 납유 거부가 현실화하면 우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최근 일부 유통 채널에 폭염으로 인한 원유 공급 부족으로 8월 말까지 일부 제품 미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7월 들어 폭염으로 젖소의 원유 생산량이 감소해 수급이 불안정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납유 거부까지 발생하면 원유 수급에 어려움을 가중될 수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젖소 대부분이 외국 품종인 홀스타인종으로, 이 종은 열대야나 습도, 무더위 등 더위에 약해 매년 여름이면 원유 생산량이 감소한다. 올해는 유독 날이 더워 예년보다 생산량이 더 감소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입장이다. 2018년 농촌진흥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홀스타인 젖소는 섭씨 27도를 넘을 때 사료 섭취량이 4.2% 줄고, 우유 생산량은 섭씨 21~23도일 때보다 8% 감소한다.
이에 더해 납유 거부가 현실화될 경우 유업계뿐 아니라 식품·외식업계 전반까지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낙농가가 우유 공급을 중단하면 우유뿐 아니라 빵이나 아이스크림 등 원유 2차 가공품을 판매자까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우유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등 국내 우유 시장이 변하고 있고, 2026년에는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과 유럽산 우유와 치즈에 무관세까지 적용된다"며 "국내 낙농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해 관계자들이 좋은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가공 업체와 낙농가 관계자로 구성되는 '원유 기본가격 조정협상 위원회'는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축산물 생산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원유 납품 가격을 결정해 8월 1일에 적용하는데, 올해는 낙농제도 개편안을 둘러싼 갈등으로 협상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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