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접종과 부작용 인과관계 규명 어려워
백신 전권 쥔 질병청장, 인과관계 인정 시
전문성·융통성 발휘 피해구제 적극 나서야
'백신 불확실성·국민 수차례 접종' 고려해야
인과관계 인정범위 확대 독자적 권한 보유
부여받은 권한 제대로 행사하고 책임져야
내부 반발·유사 피해 사례 줄소송 부담도
코로나19 백신 피해 구제 특별법 제정해야
지난 5월 새 정부의 첫 주무 부처 수장이 된 백경란 질병청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심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질병청 산하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원회는 과학적(의학적) 기준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거나, 부작용 인정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도 '인과관계 없음'이라고 결론 내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백 청장이 과거와 달리 의료인으로서 전문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 청장은 취임 전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로 근무했고,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 2020년 3월 대구·경북 지역 중심의 1차 유행 당시 방역당국에 외국인 입국금지를 촉구했고, 방역 완화 시기에는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고언을 내놨다.
강윤희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심사위원(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은 "(백 청장이)자신이 진료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백신 임상시험 중 근거자료 불충분으로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④-1 사례가 발생할 경우 과연 '인과관계가 없다'고 평가하겠느냐"면서 "거의 모든 의사들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④-1 조차 인정하지 않아 접종 부작용 원인 규명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④-1은 총 5가지 예방접종 피해 보상 심의 기준 중 하나다.
코로나19 접종 피해 보상 심의 과정에서 과거 '과학적 기준'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이 강한 코로나19 백신의 특성과 국민이 수 차례에 걸쳐 맞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까지 두루 고려할 줄 아는 유연한 '지략'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질병청장은 백신 접종과 부작용 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 또 감염병예방법과 하위법령에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다. 질병청장이 인과관계 인정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독자적인 권한이 있다는 얘기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발간한 '백신 부작용 피해자 보상규정 및 실효성 제고를 위한 개선 과제'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와 같이 국가적·사회적 필요성에 따라 긴급 투여된 백신에 한해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질병청장이 '인과성 없음'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 보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다만, 백 청장이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하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내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현재 질병청에는 정은경 전 청장과 손발을 맞췄던 간부와 직원들이 대부분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백 청장이 접종 피해 보상 범위를 확대하면 질병청이 추진해온 기존 정책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 접종 피해 보상 확대로 자칫 유사한 접종 피해자들의 행정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어 인과관계 인정 범위 확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인간의 존엄성,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어떻게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입증하라고 하느냐"면서 "피해자들은 가정이 파괴되고 삶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백신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부가 부작용 피해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 때 고스란히 저조한 접종률로 반영될 것이며, 이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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