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팍사 사임 이후 스리랑카 차기 지도자 2명 압축

기사등록 2022/07/15 16:05:05

라자팍사, 정식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적법

새로운 대통령 선출하기 위한 의회 소집도 가능해져

여당 라닐 위크레메싱게, 야당 사지트 프레마다사 유력 후보

[콜롬보(스리랑카)=AP/뉴시스]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 자료사진. 2022.07.14.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국가 경제를 파탄 내고 반정부 시위대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전 대통령 사임 이후 후속 절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절차적 적법성을 확보했지만,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든 국민적 불만을 잠재우고 경제 위기를 추스리기는 쉽지 않아 내홍이 더 깊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5일 AP통신, BBC, 인도 뉴델리방송(NDTV) 등에 따르면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고타바야가 법적으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라자팍사는 14일 몰디브를 떠나 사우디 항공편으로 싱가포르에 도착한 직후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에게 이메일로 사임서를 냈다.

스리랑카 국회의장실은 성명을 내고 "싱가포르 주재 스리랑카 대사관을 통해 대통령의 사표를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즉각적으로 사임 공식 발표를 하진 않았다. 사임서의 진위와 적법성이 확인되는데 시간이 걸려 15일에 공식화했다.

스리랑카의 반정부 시위대가 몇 달 동안 대통령 사임을 요구해온 가운데, 한 관계자에 따르면 라자팍사는 약속보다 하루 늦게 사표를 이메일로 보내온 것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라자팍사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기소 면책 특권이 있기 때문에 새 정부 체제에서 체포될 가능성을 피하고자 사임 전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이와르데나 의장은 토요일인 16일에 의회를 소집해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7일 이내에 선거 절차를 완료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스리랑카 헌법에 따르면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의회가 라자팍사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을 때까지 자동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BBC에 따르면 스리랑카 국회는 30일 이내에는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렇게 뽑힌 차기 대통령은 사임한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 라자팍사 임기는 2024년까지였다.
[콜롬보=AP/뉴시스] 14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시민들이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의 사임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앞서 분노한 시위대를 피해 몰디브로 도피했던 라자팍사 대통령은 14일 싱가포르에 도착, 이메일을 통해 사임했다. 2022.07.15.
BBC는 라자팍사의 사임 의미를 3가지 관점에서 해석했다.

우선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지위가 정당화됐다. 스리랑카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총리가 임시 지도자가 된다. 라자팍사는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 체포될 것을 우려해 망명을 희망한 국가로 알려진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사임계를 내지 않았다.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의회 선거의 개최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제거됐다. 스리랑카 의원들은 오는 20일까지 새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16일부터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간 사임서가 제출되지 않아 절차가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우려됐지만 사임서가 공식 수리되면서 이제 의장이 의회를 다시 소집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차기 대통령의 유력 후보군은 2명으로 압축된다. 주요 후보자로 여권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 야권에서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연합(SJB)의 사지트 프레마다사 대표일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원들이 라자팍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위크레메싱게 권한대행을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BBC는 전망했다.
[콜롬보=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경찰이 총리 집무실을 점거한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고 있다. 대통령의 국외 도피에 분노한 시위대는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의 퇴진도 요구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22.07.13.
다만 스리랑카 국민들이 이 같은 의회 결정을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라자팍사의 사임과 함께 총리의 사임은 시위대의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

라자팍사 출국 직후, 반정부 시위대는 위크레메싱게 권한대행의 집무실을 습격하고 퇴진을 요구했다. 이에 위크레메싱게 권한대행은 스리랑카 전역에 통행금지령을 발령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스리랑카 육군 대변인은 TV 연설에서 "위크레메싱게 권한대행이 스리랑카 군부에 체포 특권을 부여하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며 "폭력 행위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군대 또는 공공재산을 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시위대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즉각 중단하거나 군대 구성원이 합법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결과에 직면할 준비를 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지트 프레마다사 국민의힘연합 대표는 지난 11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프레마다사 대표 또한 대중적 지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정치권에 대한 깊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 동력이 떨어진다.

스리랑카 전역에서 일어나 국가를 변화시키려는 반정부 시위대의 지도층에서도 여당 후보에 대항할 만큼 경쟁력 있는 인물이 없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야당 정치인들은 새로운 통합 정부 구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합의안이 마련됐다고 볼만한 징후는 아직 없다. 또한 설령 합의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확실치 않다고 BBC는 전했다.
[콜롬보=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스리랑카 경찰이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관저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라자팍사 대통령이 부인, 경호원과 함께 몰디브 수도 말레로 향하는 스리랑카 공군기에 탑승해 출국했다고 밝혔다. 2022.07.13.
이번 사임은 라자팍사가 더 이상 국가원수로서 법적 면책특권을 갖지 못하고 피난처로 안전한 국가를 찾기 위해 노력함에 따라 그의 지위가 더욱 위태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신을 종합하면 라자팍사는 두바이, 몰디브, 싱가포르, 사우디 등으로 도피를 시도했거나 망명을 타진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라자팍사를 받아들일 국가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때 라자팍사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제다로 향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일부 외신 보도들은 라자팍사가 싱가포르에 남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외신들은 그가 실제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로 향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그의 비자 요청은 UAE에 의해 거부되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라자팍사는 1998년 미국으로 이주한 적도 있지만 스리랑카가 외국인의 대통령 출마를 금지함에 따라 2019년 선거를 앞두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이제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됐다.

일부 외신은 스리랑카 국민들이 "고타 고 홈(Gota Go Home)"을 외치는 동안 라자팍사는 '다른 집'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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