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그룹 '미쓰에이' 출신 수지(28)의 연기력을 기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데뷔 초부터 청순한 외모로 주목 받았고,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2012)을 통해 '국민 첫사랑'으로 떠올랐다. 늘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어설픈 연기력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도 연기보다 외모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24일 1·2회 공개 직후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수지는 '드림하이'(2011)로 연기를 시작한지 10여 년만의 과찬에 얼떨떨한 듯 보였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연기했을 때 마음이 떠오르더라. '저렇게 할 걸···' 하는 아쉬움이 큰데, 주변에서 좋은 얘기를 해줘서 신기하다. 늘 작품할 때 '인생 캐릭터'라는 생각으로 한다. 안나는 욕심이 많이 나서 몰입해서 연기했다. '인생작을 만났다'고 해줘 꿈 같고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와도 되나'라는 과분한 마음이 든다. 사실 칭찬에 익숙하지 않다. 이번 칭찬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할 일만 묵묵히 하려고 한다."
이 드라마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 인생을 살게 된 '유미'(수지)의 이야기다. 정한아 작가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이 원작이다. 영화 '싱글라이더'(2017) 이주영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수지는 데뷔 후 처음으로 단독 주연으로 나서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유미가 겪는 불안이 느껴졌다. 굉장히 떨렸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해온 연기 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안나는 누가 봐도 욕심을 낼 만한 작품이었다.' 뺏기지 말아야지' '내가 해야지' 막연한 욕심이 있었다. 출연 결정 후 '내것으로 잘 만들어야겠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수지는 리플리증후군을 겪는 유미의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를 연기했다. 나이대를 나눠서 생각하기보다, 유미가 안나 삶을 살게 된 과정을 곱씹었다. "처음 거짓말을 시작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 과도기를 넘어 '이게 되네' '사람들이 바보같네'라며 익숙해지는 단계까지 온다"면서 "나도 이 일을 하면서 많은 불안을 겪고 때론 화도 낸다. 유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결핍을 거짓말로 채웠다. 엇나간 욕망"이라고 짚었다. "유미의 동력은 불안이다. 누구보다 불안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난 그런 불안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질러놓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실토할 것 같다"고 했다.
극중 청각장애 어머니와 소통하기 위해 수화도 배웠다. 심리상담가에 자문을 받고, 일기를 쓰며 캐릭터에 몰입했다. 유미는 '잘 해보고 싶어서 그래' 등의 대사를 자주 내뱉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다고 칭찬 받은 아이들이 '쓸모 없다'는 취급 받을 때 취약성이 있다. 거짓말하고 나쁘다는 걸 떠나서 어떻게 보면 '사회가 유미를 이렇게 만든게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유미를 연기하면서 나의 불안을 많이 생각했다. 이런 감정은 누구나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운전 등 내가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아무 생각 안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에는 그림을 그린다든지, 집안 일을 열심히 하며 불안감을 해소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다른 것에 쏟아서 극복하는 편이다. 나도 평소 사소한 거짓말을 자주 한다. 헬스장 가서 만날 운동하기 싫어 기분 안 좋은 척 하고, 뭐 먹었는데 안 먹었다고 한다. 큰 거짓말은 얘기할 수 없다.(웃음)"
유미가 영혼없는 표정으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도 공감을 샀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했다. 촬영 딱 들어가면 '난 일을 하러 왔고, 빨리 하고 집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유미는 안나가 돼 허위 이력으로 입시 미술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예일대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묘한 표정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유미에게 학생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학생이 예일대 붙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이없고 질투도 나지 않았을까.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유미 본심이 드러나길 바랐다"고 했다.
수지는 어느덧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2010년 미쓰에이로 데뷔, 가수·연기 활동을 병행했다. 올해 2월 4년만에 신곡 '새틀라이트'(Satellite)를 선보였고, 지난달 작곡가 강승원과 함께 한 '널 사랑하니까'도 공개했다. "계속 음악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며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보다, 날 위한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사실 난 밝지 않아서 이 작품이 '내 모습과 더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안나를 하고 싶었던 이유도 '내가 살아온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돼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난 아직 20대 끝자락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요즘 '시간이 진짜 빠르구나'라고 느낀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움도 많이 든다. 30대는 너무 달리지 않고, 좀 더 쉬면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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