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인사들 "이건희 미술관 아닌 국립근대미술관 지어야"

기사등록 2022/06/13 16:13:36 최종수정 2022/06/13 16:44:45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간담회

"이건희 기증관 건립, 공청회 등 의견수렴 없이 졸속 결정"

"기증품 물리적 숫자조차 파악 못해…새 정부가 바로 잡길"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가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정부에 촉구하며 청와대 부지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해 오고 있다. 2022.06.1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이건희 컬렉션 중 근대 작품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근대 미술품을 모아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합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13일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발족 1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미술계 인사 약 680명이 참여한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해 5월27일 발족됐다. 당시 이들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기증한 작품을 토대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그해 11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이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이건희 기증관'(가칭)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건립된다고 발표했다. 이건희 기증관을 연면적 3만㎡ 규모로 조성하고, 오는 2027년 완공·개관하는 것이 목표다. 문체부는 독립적으로 기증품을 소장·전시하면서 동서양·시대·분야의 경계를 넘어서는 융·복합 문화 활동 중심이 되도록 건립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우리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기증품 가운데 '근대 작품'을 모태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했다"며 "하지만 현실은 매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문체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성격과 기증 작품의 유형별·시대별 구성비도 헤아리지 못한 채 양 기관이 기증받은 작품을 몰수하듯 거둬들여 '이건희 기증관'을 송현동 부지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증자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정부의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며 "공청회와 토론회 등 민주공화국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의견 수렴도 생략한 채 이뤄졌다. 이같은 졸속 결정은 국회에서 이건희 기증관이 아니라 '국립융복합뮤지엄' 건립을 위한 국제건축공모 관리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번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가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정부에 촉구하며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해 오고 있다. 2022.06.13. pak7130@newsis.com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후보 장소로 청와대와 이건희 기증관 건립 예정지인 송현동 부지를 꼽았다. 정 대표는 "기증관 건립을 위해서는 면밀한 소장품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전제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체부는 기증품의 물리적인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분석하지 않은 채 '국립융복합기증관' 설립을 서둘러 왔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국내 1세대 큐레이터로, 전시기획·미술평론 분야의 전문가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과 학예연구실장·덕수궁 미술관장, 광주비엔날레 전시부 부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감독 등을 지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국립 미술·박물관은 중세와 현대로 양극단화된 2관 체제에 머물러있다"며 "선진국의 각 미술관·박물관은 근대, 현대, 동시대를 포함해 3관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체로 고대·중세·근대·현대·당대라는 시대별 구분을 종축으로 삼고, 미술·건축·공예·디자인·가구 등의 유형별·장르별 구분을 횡축으로 삼아 체계화·전문화를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는 소장품의 시대적 정체성은 물론, 관람객의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체제"라고 설명했다.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을 설립·운영하는 기증자 측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증자 이름을 딴 또하나의 '미술관'은 민망한 일일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 기증품을 한 곳에 모아 '국립융복합뮤지엄'을 추진한다는 것은 경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새로운 정부는 이를 바로잡아 정상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부연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가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정부에 촉구하며 청와대 부지 활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촉구해 오고 있다. 2022.06.13. pak7130@newsis.com

문체부는 지난해 4월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이 이 회장 소장품 1만1023건, 약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대표는 "문체부가 2만3000여점이 기증된 것으로 발표했으나, 실제 박물관·미술관에서 유물 또는 소장품을 세는 기준에 따르면 1만1023건, 2만3181점으로 발표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며 "유물 또는 미술품의 수량을 셀 때는 건과 점은 마치 소설책이 상·중·하 3권으로 이뤄진 경우 3권 1질로 구분하는 것과 같이 총 몇 건에 몇 점으로 세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이건희 컬렉션을 분석한 결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유물은 총 기증점수의 88.9%에 달한다. 이 중에서 서적(전적류)이 4176건, 1만2588점에 이르러 총 57.9%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기증 유물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도자류로 총 2938건, 3596점에 달해 전체 기증품의 16.6%를 차지한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미술품은 783건, 1500점으로 6.9%에 달한다. 이는 간찰 등 서간문이나 서예작품이 포함된 수치로, 실제 미술작품(그림)의 숫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 대표는 "이건희 기증관을 건립할 경우 미술관보다는 '고서적 도서관'에 더 가까운 게 현실"이라며 "일부 전문가들은 소위 '융복합'이란 말로 국민을 호도하려 하지만 이런 백과사전식 박물관·미술관은 이미 19세기 이후 설립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장르별·시대별로 소장품을 분가시켜 전문박물관·미술관을 별도로 설립하는 추세"라며 "이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미술품을 토대로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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