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째 마주 못하는 文·尹…신·구 권력갈등 장기화 하나
尹측 496억 예비비 국무회의 의결 압박…靑 '불편 기류'
안정적 국정 인수인계 험로…盧·MB 갈등 재현 우려도
이명박 전 대통령(MB) 사면과 한국은행총재·감사위원 등 인사권을 둘러싸고 한 차례 노출했던 신·구 권력 간 충돌 양상 후 문 대통령의 '조건 없는 만남' 제안이 무색할 정도로 첫 회동 성사 과정이 순탄치 않다.
여기에 윤 당선인이 취임 후 사용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완전 이전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의제가 더해진 양상이다. 모든 것들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풀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신·구 권력 간 충돌은 첫 회동 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청와대 이전 비용 496억원에 대한 정부 예비비 편성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검토를 거쳐서 내일 국무회의 상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기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연쇄 이전 비용을 총 496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예비비 문제나 이전 문제는 이 정부의 인수인계 업무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었다.
추산한 정부 예비비 496억원 속에는 국방부·합참 건물 이전 118억원, 국방부 청사 리모델링 비용 252억원, 대통령 경호처 이전 비용 99억9700만원, 대통령 관저로 사용할 기존 육군참모총장 한남동 공관 리모델링 비용 25억원 등이 포함돼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야 윤 당선인의 용산 국방부 청사로의 집무실 이전 구상을 최종 진행할 수 있다. 청와대 내부적으로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의 협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에 대한 불쾌 기류가 감지된다. 당선인의 구상에 개별적 입장을 내지 말라는 문 대통령의 함구령에 따라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전화 인터뷰에서 사회자의 관련 질문에 "이 문제가 인수위원회를 통해서 현 정부에 정확히 제안·제출된 것인지 (여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정식 과정을 통해서 제안이 되고, 요청이 되면 정해진 과정들에 의해 긴밀히 협의해 나가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내일 국무회의에 예비비 승인 안건이 올라갈 것이라는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의 확정적 전망과 결이 다르다 할 수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 전 여론 조성을 통한 압박의 일환이라는 불편한 시각이 제기된다. 양측은 지난주 회동일 발표 과정에서 신경전 끝에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대통령직인수위법)에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인수위의 직무범위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향후 인수위법과 국가재정법 등 사이의 법리 해석을 놓고 갈등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 당선인이 전날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정부 인수인계 업무'로 규정한 것은 위법한 예산 집행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 밖에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사항'이라는 조항에 기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주 회동 성사 과정에서 한 차례 충돌 원인이 됐던 갈등 사안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MB 사면 여부를 비롯해 한은 총재, 감사위원, 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 현직 대통령 임명권 등 정권교체기에 당면한 과제들 모두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풀어야 할 숙제다.
박 수석은 이날 라디오에서 신·구 권력 갈등의 장기화 해석에 대해 "청와대 뿐만아니라 당선인 측에서도 부담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물리적 비교보다는 신뢰를 갖고 두 분의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내용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갈등이 장기화 될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시절 통일부와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요구 당시 빚었던 충돌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이 당선인 인수위는 통일부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등 진보정권에서 확대·신설된 부처를 대거 폐지 또는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당선인은 열리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당시 노 대통령에게 처리를 요구했다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당선인 인수위 시절 갈등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사실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추진한 정부조직개편안은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이어 "문제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정부조직법 개정 법안을 노 대통령에게 공포해 달라고까지 요구한 것"이라며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하려는 일을 참여정부가 발목을 잡는 것 같은 모양이 돼 버렸다"고 토로했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는 회동 과정에서 대선 전 윤 당선인의 이른바 '집권 시 적폐 청산 수사' 발언이 재점화 될 경우 '불편한 관계'는 퇴임 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권 과도기 안정적 국정이양의 어려움은 물론, 문 대통령 퇴임 후까지도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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