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중대재해 처벌 피하자…한전, 대형로펌에 대응 매뉴얼 의뢰

기사등록 2022/03/08 05:00:00 최종수정 2022/03/08 08:33:42

최근 '안전보건관리체계 진단 용역' 검토

경쟁입찰로 로펌 선정…자문비 3.4억 달해

중대재해법 맞춘 산업현장 개선책 등 제시

하청업체 사고 해석 맡겨…도급 입장서 진단

'1호 처벌' 피하자…발전업계 우려 목소리도

[나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1.09.23. hgryu77@newsis.com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한국전력이 김앤장, 광장 등 국내 대형 로펌에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자문을 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법률 대응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중대재해법이 새로 시행된 지 한 달을 넘겼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대형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이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법적 대응책을 검토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사 안전보건관리체계 진단·환류 용역안'을 마련했다.

이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전의 안전 관리 수준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에 기반을 둔 중대재해 대응 관리 체계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

진단 대상은 경기, 대전세종충남, 광주전남 등 지역본부와 경인건설본부, 전력연구원, 한전아트센터 등 9개 사업장이다. 착수일로부터 1년간 상시 진단체계를 구축해 점검을 진행하게 된다.

비용은 약 3억4000만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광장, 김앤장, 세종 등 대형 로펌 변호사의 시간당 평균 자문비를 근거로 산출한 액수다.

한전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중대재해법 법률 자문 전문기관을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기관은 안전보건체계 진단, 사업소 점검 및 개선 방안 도출, 도출 사항 개선 및 안내, 현장 개선 여부 재진단 등의 업무를 맡는다.

아울러 중대재해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등 안전 관련 법령에 대한 종합 가이드라인(매뉴얼) 제작도 추진한다.

이외에 송배전·건설 공사 등 분야별 평가 체계와 계약조건 개정 방안, 청소·식당 등 계약 분야 안전보건 관리 체계 강화 방안, 시민재해 분야 대비책 등을 제시하게 된다.

[전주=뉴시스] 김얼 기자 = 지난해 11월8일 전북 전주시 전주남부시장 인근의 전봇대가 기울어져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2021.11.08. pmkeul@newsis.com


이번 법률 자문의 핵심은 중대재해법 제4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와 제5조 '도급·용역·위탁 등 관계에서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해석이다.

여기에서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을 요구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약 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사망자 1명 이상)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처벌 조항은 기존 산안법 등에 비해 수위가 높다. 이는 한전이 법적 대응 능력을 키우려는 이유다. 또한 법 시행 초기이니만큼 범위와 처벌 대상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을 마련해두려는 것이다.

특히, 한전은 국내 최대 공기업인 만큼 다양한 산업 현장이 존재한다. 현재 한전이 관리하는 전주, 철탑, 변전소 등에서는 매년 28만 건에 달하는 건설과 유지·보수 관련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고의 상당 부분이 하청업체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 11월 경기도 여주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전기공사 사고로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이후 한전은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에서 작업을 더는 하지 않기로 하는 등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을 내놓으면서 사태를 수습한 바 있다.

올해 초 발표한 이 대책을 두고 당시에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이번 용역에서도 한전은 도급인의 중대처벌법 요구 사항과 이행 수준을 진단하고, 다른 기관의 중대재해 사례와 법적 조치 사항을 분석해 수시로 한전에 적용·검토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사업장 안전을 강화하기보다 고액을 들여 법률 자문부터 나서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현재 발전업계는 중대재해법 '1호 처벌' 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더군다나 이 법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는 상황이다.

한 발전업계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대재해법 관련 사고에는 더욱 조심하고 있다"며 "공기업 사장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서 중대재해 예방과 관련된 업무를 챙기는 일도 잦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정승일(왼쪽 세번째)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지난 1월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 감전 사망사고'와 관련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2022.01.09. scch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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