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선배 이정수가 본 황대헌 "9바퀴 끄는 레이스라니…"[베이징2022]

기사등록 2022/02/10 06:00:00 최종수정 2022/02/10 06:04:54

2010년 밴쿠버대회 챔피언 이정수, 해설위원으로 후배 금메달 중계

[베이징(중국)=뉴시스] 김병문 기자 = 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 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황대헌이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2022.02.09. dadazon@newsis.com
[베이징=뉴시스]권혁진 기자 = "한국 쇼트트랙의 매운 맛을 보여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이정수(33)는 12년 만에 자신의 뒤를 이어 이 종목 금메달을 거머쥔 황대헌(23·강원도청)의 레이스를 지켜본 뒤 이같이 말했다.

황대헌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완벽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황대헌은 9일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09초219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은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남자 1500m에서 총 6개의 금메달 중 4개를 획득했다. 2006년 토리노 대회 챔피언 안현수는 빅토르 안(러시아)으로, 2018년 평창 대회 우승자인 임효준은 린샤오쥔(중국)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두 선수와 황대헌을 뺀 한 명이 바로 이정수다. 이정수는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한국인들에게 무척 익숙한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를 밀어내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표 선발전 탈락으로 베이징 대회 출전의 꿈을 접은 대신 KBS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 이정수는 자신의 뒤를 잇는 후배의 역주를 직접 중계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방송이 끝난 후 만난 이정수는 "밴쿠버 대회 이후 12년 동안 올림픽에 도전했다. 황대헌이 대표 선발전 때 '올림픽에 같이 나가자'고 하더라. 내가 베이징에 나가지 못했는데 (황대헌이) '여기서 정수형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약속을 지켜줘서 뿌듯하고 고맙다"고 진심을 전했다.

결승전은 전례를 찾기 힘든 특별한 환경에서 진행됐다. 준결승에서 어드밴스를 받은 이가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무려 10명의 선수가 모여 마지막 질주에 나섰다.

충돌 위험이 무척 컸다.

황대헌은 이 불안요소를 빠르게 제거하기로 했다. 그가 들고 나온 작전은 일찌감치 앞으로 치고 나가 레이스를 주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정수(왼쪽), 진선유
"1500m를 10명에서 뛰는 건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두른 이정수는 "(황대헌은) 이미 경기 전에 계획을 세운 것 같다. 절대 뒤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9바퀴를 남기고 선두로 치고 나간 황대헌은 끝까지 9명을 달고 달렸다.

이정수는 "9바퀴 남기고 모든 것을 끌고 가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마지막 바퀴에서 랩타임이 떨어졌지만 황대헌이기에 (금메달까지) 가능했다"면서 "강한 선수가 선두에 서면 뒤에 있는 선수는 추월하고 싶어도 못한다. 다들 자리만 지키려고 했다. 그 조건이 맞아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황대헌은 선두에서 끄는 레이스를 원래 잘 안 한다. 9바퀴를 다 끄는 스타일은 아니다. 국민들에게 쇼트트랙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모 아니면 도의 레이스를 보여준 것 같다"고 했다. 황대헌이 대회 전 블랙핑크 제니의 응원을 부탁한 것을 떠올리며 "제니에게 응원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금메달"이라며 웃기도 했다.

불과 이틀 전 1000m 준결승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메달의 꿈을 날렸던 황대헌이기에 이번 질주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정수는 "멘탈이 약하면 타격이 오는데 한국 사람들은 정말 강하다"면서 "내가 아는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웃고 나쁜 일은 흘려 보낸다. 이번 일도 걱정 안 했다. '다 죽었어'라는 마음으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결승전에는 이준서(22·한국체대)와 박장혁(24·스포츠토토)도 출전했다. 5위와 7위로 입상엔 실패했지만 미래를 보여줬다.

이정수는 "이준서는 라운드를 거칠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스케이팅이 좋고, 발이 빠르지 않은데 순간 스피드가 괜찮다"면서 "(10명이 뛰는) 상황이 많이 있지 않았을 뿐"이라며 이번 계기를 통해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장혁을 두고는 "부상에도 결승에 진출했다. 메달을 떠나 감격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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