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근사했던 공수처장의 1년전 취임 일성

기사등록 2021/12/29 12:08:46 최종수정 2021/12/29 16:13:44
[과천=뉴시스] 고가혜 기자 = '성찰적 권한 행사'는 약 1년 전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처음 한 말이다.

김 처장은 지난 1월 취임사에서 "국민이 맡겨준 권한을 항상 절제하며 행사할 것"이라며 이를 '성찰적 권한 행사'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공수처가 권한을 성찰적으로 행사한다면 당연히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출범 1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공수처가 과연 주어진 권한을 성찰적으로 행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취임사와 반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최근 공수처는 언론인 및 민간인, 정치인 등에 대한 '사찰 논란'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수사기관은 전기통신사업법 83조에 따라 영장 없이 통신사로부터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가입자 개인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문제는 공수처가 수사 대상도 아닌 언론인과 민간인은 물론 야당 정치인의 정보까지 무분별하게, 저인망식으로 조회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공수처 비판 보도를 했던 일부 기자들을 상대로는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통화내역까지 살피고, 그 가족·지인들의 통신자료도 조회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는 취재원 색출 혹은 보복 수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비판과 함께 헌법상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뒤늦게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통신자료 조회가 검·경 등 수사기관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수사기법이었으며 적법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 검·경과 다른 길을 걷겠다던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산물과도 같은 기관이다. 과거 검찰이 해오던 비인권적 수사 관행을 타파하고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나누겠다는 취지였다. 그런 공수처가 검찰 관행을 성찰 없이 따랐다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망각했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들릴 뿐이다.

게다가 기자를 상대로 통신 영장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공무상 비밀누설 사건 내사 과정에서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답변 외에는 어떠한 해명도 내놓고 있지 않다. 공수처 수사대상인 고위공직자도 아니고,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당사자도 아닌 기자를 상대로 강제수사를 벌인 이유와 근거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공수처의 의도와 목적에 더 큰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공수처는 이같은 통신조회 논란 외에도 인권 침해 및 절차적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확실한 혐의 입증 없이 피의자(손준성 검사)의 인신 구속을 시도했다가 1번의 체포영장과 2번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는, 사실상의 망신을 당했다.

여기에 일부 압수수색은 절차적 위법으로 법원에서 무효 판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또 압수수색 대상을 잘못 설정해 법원을 기망했다는 비난을 받고, 절차 위반 논란에 압수수색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아마추어'고 '신생축구팀'이기에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인권친화적 수사, 헌법상 적법절차원칙을 지키는 수사는 실무 경력이나 외부 여건, 인력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공수처 검사와 수사팀 개개인의 '성찰과 인식'의 문제다. 지난 1년 간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성찰적으로 행사해온 것이 과연 맞는지, 스스로 다시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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