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예지 인턴 기자 =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와 비대면 만남이 보편화됐다. 일상적인 '본 캐릭터'의 모습에서 벗어나 상황마다 다른 콘셉트의 캐릭터로 변신하는 '부캐릭터'(부캐), 또 하나의 부캐인 '아바타'의 모습으로 소통하는 가상공간 '메타버스' 열풍이 일고 있다.
MBC '놀면 뭐하니'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부터 댄스 가수 '유두래곤', 치킨 만들기 프로젝트의 '닭터유' 등 수많은 부캐들을 선보이고, 송은이와 김숙이 메타버스 팬미팅을 통해 팬들과 비대면 '불멍'까지 즐긴 것이 대표적 보기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본격화된 '신문물'처럼 여겨지는 '부캐'와 '메타버스'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봐 온 애니메이션들 속에 녹아 있는 요소다. 성우(聲優)들이 이미 몸 담아온 문화다.
◆애니메이션=메타버스…캐릭터=성우들의 부캐
애니메이션은 가상의 정적인 이미지에 성우가 목소리를 입혀 탄생시키는 콘텐츠다. 배우나 가수가 직접 해당 프로그램 속 세계 내지는 무대에 등장하는 드라마·영화·가요 프로그램의 세계관과 다르다. 애니메이션에 성우의 현실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애니메이션 속에서 성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에는 해당 캐릭터만의 깊이 있는 '서사'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나를 '대신'하는 메타버스 속 아바타보다 한층 진전된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성우들은 하나의 작품 속 특정 캐릭터를 단발적으로 연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를 담당하며 그들만의 '부캐'를 구축한다.
90년대생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내에서 12세의 '루나'와 16세의 '풀문'이라는 1인2역을 담당한 성우 이용신이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다소 얌전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연기했는데, '명탐정 코난'에서는 정반대 성격의 말괄량이 캐릭터 '정보라'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또한 성우 양정화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케로로' 역할부터 '명탐정 코난' 속 '검은 조직'의 간부 '베르무트' 역할 등 개구리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캐를 보유하고 있다.
◆'성우 덕질'과 '아이돌·배우 덕질'의 차이점은?
학내에서 '애니메이션 덕질 소모임'을 주최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 심모(24)씨는 "깊은 서사보다는 아이돌의 비주얼적인 측면에만 집중하는 아이돌 덕질과 달리, 성우 덕질의 경우 성우분들의 작품과 연계된 덕질을 깊이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차별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배우 덕질도 해당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관심 있게 탐구하고 작품 자체에 몰두하지 않는 이상, 상대적으로 비주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아이돌 덕질과 마찬가지"라며 "성우 덕질은 성우의 비주얼보다는 대사의 내용과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성우의 목소리와 연기 자체에 매료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는 성우 개인이 맡는 특정 캐릭터 하나가 아닌, 작품 전체와 해당 성우가 배역을 맡는 타 작품으로까지 팬들의 애정이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심모씨는 "성우 덕질을 하며 (좋아하는 성우가 연기하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이나 더빙 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전했다.
또 성우 팬들은 성우들의 여러 '부캐' 간 갭 차이에 매력을 느끼고 '입덕'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씨는 "성우의 능글맞은 캐릭터 연기로 덕질에 입문한 팬이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우의 또 다른 모습, 속칭 '갭모에'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갭모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캐릭터가 평소에는 보여 주지 않는 모습이나 행동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을 가리킨다.
심씨는 "사람들은 낯설고 새로운 것에서 매력을 느낀다. 내가 알던 익숙한 성우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는 건 성우 덕후들에게 큰 묘미"라고 덧붙였다.
이에 성우들 또한 자신들의 '부캐'에 열광하는 팬들을 공략하기 위해 SNS상에서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에 이입해 각종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자신만의 캐릭터 해석을 팟캐스트·유튜브 등지에서 이야기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나선다.
실제로 성우 이용신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인 '이용신TV'에서 자신이 연기한 여러 '부캐'들의 목소리로 아이유의 '밤편지',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 각종 가요들을 커버하거나 시를 낭독한다.
◆그렇다면 '성우 덕후'들의 활동 양상은?
성우들의 '메타버스'인 애니메이션 속 부캐들에게 매료된 '성우 덕후'들은 단순히 성우들이 출연하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소비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심씨는 "좋아하는 소설의 한정판 특전이 드라마 CD인 경우가 있었는데, 거기에 좋아하는 성우분들이 나와서 일반판이 아닌 한정판으로 구입한 경우가 있다. 또 'OSMU(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영향으로 웹툰이나 웹소설이 오디오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 오디오 드라마에 좋아하는 성우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원래는 살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성우들이 운영하는 유튜브·팟캐스트 플랫폼의 방송을 청취하거나 애니메이션 영화의 더빙 시사회 참석을 위해 티켓팅 경쟁을 하는 등, 성우 덕후들의 덕질 양상은 다양하다.
신세대 문화로 여겨지는 '메타버스'와 '부캐' 요소를 가지고 인기몰이 중인 성우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의 인기 저변엔 '레트로 패러다임'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씨는 특히 2030 세대들을 중심으로 성우들의 인기가 늘어가는 이유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흥행 이유와 같다고 봤다. "지금의 2030 세대들은 어릴 때 투니버스에서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던 세대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성장한 후 어린 시절, 즉 행복하고 큰 걱정이 없던 시절의 문화가 다시 유행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어린 시절의 향수와 현재의 유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우계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opeyeji@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