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감성, 그리워하는 사람들 여전히 존재"
[서울=뉴시스]고다연 인턴 기자 = "극장에 갈 필요성을 별로 못 느꼈죠. 핸드폰으로도 충분히 '오징어 게임' 같은 걸 볼 수 있잖아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ver the top·OTT)가 콘텐츠 소비의 새 지평을 열었다. 지난 12일 글로벌 대기업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상륙은 단연 가장 큰 화두였다.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을 겪으면서 OTT 개념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발 빠르게 새로운 플랫폼을 받아들였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구독팟(계정을 공유해 구독료를 나눠서 지불하는 모임)'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상륙 첫날 디즈니 플러스 앱의 일간활성사용자수(DAU)는 약 38만 4000명이다.
반면 코로나 19로 인해 영화계가 타격을 입으면서 작년부터 극장을 찾는 관객수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이와 맞물려 '넷플릭스' 등 OTT업계는 고객 확보에 총력을 다했다.
대학생 이 모(21)씨는 "넷플릭스 등장 이후로 영화관을 잘 찾지 않게 된다"며 "영화관이 예전에 비해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극장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달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시행되면서, 극장가도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고비를 넘기고 상승세를 보이는 극장 이용객과 거대 OTT 디즈니 플러스 상륙은 콘텐츠 생태계는 급변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OTT 사용연대기
"디즈니 플러스 4인 구독팟 모집해요. 같이 쓰실 분?"
처음 경험한 OTT는 왓챠였다. 2016년 당시 한 달에 단돈 4900원, 커피 한잔 가격에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OTT다. 저렴한 가격과 영화 스트리밍이라는 신선함에 끌려 왓챠 구독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영화 시청의 경험은 주로 극장에 집중돼 있었다. 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은 낯선 개념이었다. 이후 '루머의 루머의 루머', '기묘한 이야기' 등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가 입소문을 타면서 넷플릭스에 대한 인지도 역시 높아졌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넷플릭스를 구독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기존 플랫폼들로는 접하기 어렵던 해외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었다. 그 뒤로도 넷플릭스 '종이의 집', 왓챠의 '왕가위 감독 영화 모음' 등 화제성 높은 콘텐츠들이 주기적으로 업로드 되며 구독 기간을 연장했다. OTT 콘텐츠가 인기를 얻다 보니 지인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측면도 있었다.
마블팬들을 향한 적극적인 홍보에 디즈니 플러스 역시 상륙 첫날 손쉽게 '4인 구독팟'을 모아 구독을 시작했다. 1년 구독료 99000원. 4명이서 구독하면 1년간 인당 약 25000원 정도로 디즈니 플러스를 즐길 수 있다.
처음 디즈니 플러스를 사용한 날 첫 화면 상단에 위치한 '마블', '디즈니', '스타워즈' 등 카테고리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강한 콘텐츠 경쟁력을 실감하게 했다. 수많은 마블 영화가 한 카테고리 안에 모아져 있는 것 역시 만족감을 줬다. 그렇게 여러 플랫폼을 이어가며 OTT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하지만 막상 사용하다 보니 불편한 점들 역시 눈에 띈다.
◆아직은 준비가 덜 된 OTT?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OTT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미 세간에 알려져 있듯 기존 상업 영화 대비 제작 환경과 시나리오에 대한 기준이 자유로운 덕에 과감한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몰입하며 봤던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SF 드라마다. '뻔하지 않은' 신선한 전개와 소재가 흡입력을 높였다.
하지만 최근 들리는 잡음들은 아직 OTT 산업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디즈니 플러스 상륙 첫날 스마트 TV에 디즈니 플러스 계정을 연동해 몇 개의 익숙한 프로그램들을 재생했다. 즐겨 보던 마블 영화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곧이어 자막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상과 살짝 어긋난 속도, 중요한 단어를 오역한 자막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함께 '구독팟'에 참여한 대학원생 이 모(26)씨 역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좋아해 구독했는데 오역이 거슬려 아예 자막을 끌까 고민했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용 시 불편함 외에도 콘텐츠 접근 격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늘어나는 플랫폼 개수로 인한 구독료 부담, 국내 OTT 업체들의 위기감 등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OTT 산업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영화관도 살아나나?…영화관과 OTT의 특별한 공조
OTT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흐름에서 영화관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달부터 백신패스관이 도입됐다. 백신패스관 도입 후 다시 찾은 영화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달 21일 찾은 영화관은 한산한 로비에 5~6명 정도가 있었다. 불과 이주일 후인 이달 3일에 찾은 영화관은 긴 대기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쪽에는 백신패스관과 일반관을 구분하는 대기줄 안내가 있었다. 대학생 김모(22)씨는 "백신패스관 시행 이후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며 "영화관에서 자유롭게 팝콘을 먹으며 관람하는 것은 일상의 큰 즐거움"이라고 전했다.
OTT와 영화관의 협력 관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 9월 CGV에서 개최된 '넷픽(Netfic)'은 넷플릭스 영화들을 CGV에서 상영하는 행사였다. 관객들은 넷플릭스의 신선한 콘텐츠를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다.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넷플릭스 공개 전 일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다. 경쟁 관계 혹은 지는 별과 뜨는 별의 관계 정도로 보였던 두 회사는 공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의 '완다비전'은 1화를 미국의 옛날 시트콤 형식으로 연다. 작은 화면 비율과 흑백 화면, 과장된 인물들의 몸짓은 과거 TV 프로그램들에 대한 명확한 오마주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넓어지는 화면 비율에 색이 입혀지며 현대의 프로그램 화면에 가까워진다.
'마블 코믹스' 지면으로 시작해 브라운관의 시리즈로도 사람들을 찾았던 마블의 영웅들은 선명한 화질과 큰 스크린으로 팬들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시대의 흐름에 맞춰 OTT에서도 활약을 이어간다.
이처럼 OTT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영화관만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두 업계의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사회초년생 안 모(26)씨는 "코로나 이후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OTT 시청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작품은 여전히 영화관에서 큰 화면과 큰 사운드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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