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꺾는 저임금·고용 불안" 예술활동에 대한 불안감 호소
예술 기획자·디자이너 월 수입 50만~100만 원…'부업 필수'
예술과 생업 기로 "정부 보조금 없이 창작 활동 어렵다"
"을의 설움 삼킨다"…잡무 많고 저작권 침해도 비일비재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젊으니 '몇 년 만 버텨보자' 며 멋진 예술 기획자를 꿈 꿨죠. 지금은 정부 보조금 없이 창작 활동이 힘들 것 같다는 압박감이 커요."
'문화수도' 광주에서 예술 직종에 일하는 청년 프리랜서들이 적은 임금과 고용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14일 광주문화재단 등에 따르면, 광주에서 예술 활동 증명 인증을 받은 예술인은 2747명이다.
이들은 공연·전시 기획 등에서 일하고 있지만, 임금이 적어 여러 부업을 병행하며 '지속 가능한 예술'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광주에서 3년째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A(27·여)씨는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아 평균 연봉 600만 원, 월 50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A씨는 지역민에게 예술로 치유와 힐링을 선사하자는 각오로 기획자의 길로 들어섰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A씨는 예술 기관에서 400만~1500만 원의 사업비를 받고 전시를 기획하거나, 예술 콘텐츠를 만든다. 그러나 사업비 대부분이 ▲전시장 대여 ▲작가 인건비 ▲홍보물 제작비 ▲홍보 수수료 등에 쓰인다.
5~6개월 간 전시를 마치고 A씨의 수중에 남은 돈은 200만 원 남짓. 다른 2~5명의 기획자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면, 사업비를 나눠야 하는 실정이다.
가끔 자신에게 책정된 금액 없이 무급 전시를 기획할 때도 있다.
A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예술 자문·학교 내 아르바이트 등 부업도 병행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부모님께 매달 용돈을 받고 있다.
A씨는 1년에 전시전 3개 가량을 기획하는데, "이 정도면 업계에서 그나마 사업을 많이 따온 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전시 공간과 작가 섭외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수십 가지 세금 증빙 서류를 제출하고, 머리를 싸매고 기획한다. 노동의 대가는 너무 적다. 스트레스로 인해 급성 축농증이 찾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멋진 기획자가 되겠다며 '몇 년만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요즘은 보조금 사업 없이는 창작이 힘들어질 것 같다는 압박감에 짓눌린다"고 토로했다.
공연 무대 디자인을 하는 B(25)씨도 이 달 예술인 정부 보조 사업이 종료돼 앞으로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해야 할 지 막막하다.
예술 전공을 한 B씨는 대학 졸업 뒤 공연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무대 디자인·제작·시공을 하고 50만 원 가량을 받았다.
지금까지 진행한 무대 디자인 작업은 4차례. 관련 계약이 드물어 B씨는 결국 '부업'에 나섰다.
B씨는 지난 6월부터 기관에서 근무하고 월 100만 원의 정부 예술 보조금을 받았다. 틈틈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술 강의도 했다.
B씨는 "운이 나쁠 때는 무대 디자인 외주 제의나 강사 요청이 없어 한 달 간 수입이 없던 적도 있다. 그나마 보조금으로 고정 수입이 생겼는데, 이 달로 사업이 종료돼 앞으로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지 '그림을 그리는 예술인'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돈에 쫓겨 여러 부업을 병행하고 있다보니 무엇이 본업이고 부업인지 혼란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작권 침해·디자인 외 추가 업무 요구도 잇따른다. 다음 계약을 이어가야 하는 '을의 입장'인 만큼, 부당한 요구에도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30대 여성 C씨는 기관·고객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노하우와 기록물이 축적된 원본 파일을 요구해 골머리를 앓는다. 본래 업무인 디자인이 아닌 홍보물 인쇄·배포도 담당한다.
C씨는 200여 만 원의 예산을 받고 디자인은 물론, 업체 선정부터 홍보물 인쇄, 배포·부착 관리 업무, 인건 정산까지 한다. 디자인이 아닌 다른 업무에 드는 시간과 출장 비용은 따로 산정하지 않는다.
C씨는 "디자인만 하고 싶은데, 제작과 시공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기관에서 일일이 업체를 만나기 귀찮으니 디자이너에게 다 떠맡기는 느낌"이라며 "디자이너의 지적 재산인 원본을 당연시 요구하는 문화도 문제다. 다음 계약을 이어가야 하는 을의 입장으로서 추가 업무 요구나 부당한 원본 파일 요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광주시 비정규직센터가 올해 발표한 청년프리랜서 설문 조사 결과, 광주에 사는 청년 프리랜서 (만 19세 이상~34세 이하) 142명 중 88명(62%)이 '일에 대한 대가·비용 산정이 적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인권 침해나 부당 대우 경험도 많았다. 유형별로는 ▲적정한 수익 미 배분 (35.2%) ▲일에 대한 지나친 간섭·방해 (33.8%) ▲상당 기간 임금 체불(30.3%) ▲비용 상당 공제 (28.9%) ▲언어폭력(16.9%) ▲개인정보 부당 이용 (10.6%) ▲성희롱·성추행·성폭력(9.2%)순이었다.
문화재단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정확한 예술인 수와 노동 환경 등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올해 조사를 토대로 예술인 복지나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yein034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