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갤러리서 2년만의 韓 개인전
코로나 사태속에서 세계 곳곳서 전시 행보
독일에서 내한 간담회...회화·수채화 40여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가왕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노래가 떠오르는 그림이다.
독일에서 날아온 화가 톰 안홀트(34)는 '이중적'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는데, 로맨틱함 보다는 폭력적이고 쓸쓸하면서 공포감이 스민 그림을 내놓았다.
2019년 학고재청담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선보인 이후 호평받고 학고재에서 전시를 약속한 그는 2년만에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한국에 들어왔다.
2년 만에 한국에 가져온 그림은 피고 지고, 밝음과 어둠이 함께하는 양가적인 서사가 가득하다. 그는 코로나 사태속에서도 지난해 런던,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코펜하겐 등 세계 곳곳에서 개인전을 선보이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학고재 본관에서 여는 이번 전시는 톰 안홀트가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을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 24점을 선보인다. 유화 12점과 수채화 12점을 다채롭게 구성했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의 서사’다. 늘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의 양가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전시에 선보인 화면들은 저마다 낭만적인 동시에 불안하고, 때로 폭력적인 사랑 이야기를 품고 있다.
톰 안홀트의 작업은 미술사와 가족사, 경험과 상상 속 이야기들을 하나의 화면 위에 중첩하는게 특징이다. 복합적인 서사의 망을 특유의 영화적 감각으로 엮어낸다.
전시 타이틀은 '낙화'. 전시장 입구에 걸린 작품 '낙화'가 그대로 보여준다. 전시명과 동일한 '낙화'는 전시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마무리로 "줄기로부터 떨구어진 꽃은 미약하게 살아 있으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독일에서 내한해 27일 한국 기자들을 만난 톰 안홀트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미약하게 살아 있는 꽃 봉우리가 사랑의 정서를 상징한다"면서 "이번 전시에 마지막으로 그린 이 작품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용기를 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을 주제로 했지만 화면속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마치 연극무대처럼 풀어낸 그림은 작가가 책을 쓰듯 이야기를 구성했다.
동심 가득한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나,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풀어놓은 전집 같은 전시다.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연 톰 안홀트는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다시금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 순서는 마치 책 첫페이지에서 연결되듯 이어진다. '부서진 바위 (무명의 페르시아 세밀화)'(2021)의 연인처럼 폭력성을 드러낸다. 또 '2 AM'(2021)의 인물이 잠든 밤중 침대 밑의 유령이 되어 꿈의 세계를 괴롭히기도 한다. 사랑은 '낯선 사람'(2021)이 드러내는 고립의 정서를 감내하는 일이다. 마직막으로 '인사가 아닌'(2021)의 화면은 버림받은 연인의 무력감을 묘사한다. 예기치 못한 죽음의 상황, 또는 익사의 위기 속에서 도움을 외면당한 이의 절망에 비유된다.
톰 안홀트의 작업은 주로 콜라주와 수채화 습작에서 시작된다. 자르고, 편집하고, 확대한 일상의 장면들이 작가 특유의 영화 필름기법처럼 선보이는데, 이번 전시에는 가로 세로 직사각형의 액자에 담겨 더욱 눈길을 끈다.
매스미디어 시대, 오로지 붓과 물감으로만 완성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 신선하다. '페인팅은 위대하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전시는 11월21일까지.
◆톰 안홀트는 누구?
톰 안홀트는 1987년 영국 바스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어머니와 페르시아계 유대인 혈통을 지닌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랐다. 2010년 런던예술대학교 첼시 컬리지 오브 아츠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에 정착했다.
회화 작가로서 독자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미술사와 자신의 가족사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이에 삶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더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낸다. 톰 안홀트는 청소년기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의 전시를 관람한 것을 계기로 작가의 꿈을 키웠다.
유럽의 모더니즘 작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기반 삼아, 기독교 중심의 서구 문화와 서아시아의 페르시안 세밀화 양식을 작품세계에 끌어들였다. 서구 모더니즘과 이슬람의 문화적 요소가 하나의 화면 위에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화면 속 밤하늘에 빛나는 달, 기하학적 무늬들, 평면적인 배치는 페르시아 세밀화에서 참조한 요소들이다.
지난 2018년 쿤스트 페어라인 울름(울름, 독일)에서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2019년 학고재청담(서울)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았다. 갤러리 아이겐+아르트(베를린; 라이프치히, 독일), 갤러리 미카엘 안데르센(베를린; 코펜하겐), 조쉬 릴리(런던), 프랑수아 게발리 갤러리(로스앤젤레스, 미국), 1969갤러리(뉴욕) 등 세계 곳곳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동시대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컬렉션 알레산드로 베네통(트레비소, 이탈리아), 컬렉션 마리오 테스티노(런던), 컬렉션 미티넨(독일; 핀란드), 사치 컬렉션(런던), 덴마크 서지센터(코펜하겐) 외 다수의 기관 및 재단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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