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서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
1953년 자화상~1985년 작고하기까지 작품 등 200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인 故 최욱경(1940~1985)의 작품 8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공개됐다.
화가 최욱경(1940~1985)은 국내 추상회화의 전설이자 '요절 화가'로 유명하다. 1985년 7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45세에 별세했다.
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수집품에도 이름을 올려 더욱 주목받고 있는 최욱경 작품은 대담하고 화려한 색과 분방한 필치로 내면의 열정과 자유에 대한 열망, 자연의 생명력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표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7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최욱경의 대규모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를 과천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미술 교육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작가의 전방위적인 활동 이력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최욱경의 작업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루이스 캐럴(1832~1898)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와 연계된 다층적인 지점들에 주목해 기획됐다.
1950년대 이후 미발표작 공개와 함께 미술과 문학의 연관 관계 조명하는 1953년 자화상부터 1985년 작고하기까지의 작품 및 자료 200여 점을 선보인다.
◆'요절화가' 최욱경은 누구?
1950년 서울에서 출생한 최욱경은 서울예고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63년에 도미(渡美)했다.1963~1966년 사이의 유학 기간 동안 추상표현주의와 후기회화적 추상에서 팝아트와 네오 다다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미국 현대미술을 폭넓게 학습했다.
이를 기반으로 최욱경은 1960년대 중반부터 색면의 대비와 표현적인 붓터치가 두드러지는 추상회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캔버스 위에 문자와 텍스트를 도입하거나 신문, 잡지를 이용한 콜라주 등 재료의 사용과 기법적인 면에서 다채로운 실험을 시도하게 된다.
1965년 '앨리스, 기억의 파편'을 통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관심을 처음 구체화했다. 이 책의 출간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도 관련 도서들이 재출간되었던 해에 '앨리스, 기억의 파편'이 제작된 것으로 보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최욱경의 관심도 당대의 이러한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언어와 문화가 모두 낯선 미국 유학의 경험을 ‘뿌리가 흔들리는 충격’이라고 표현했던 만큼, '원더랜드'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뒤바뀌는 혼란을 겪는 앨리스의 이야기가 쉽게 공감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욱경이 미국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1968년 뉴햄프셔에 위치한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의 조교수로 재직하게 된 시기부터였다. 같은 해에 그는 '평화'와 같은 구상 작업을 통해 당대 미국 사회의 주요 쟁점이었던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 동조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1960년대의 작업에서 절규하는 '화난 여인'(1966)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발언하는 '평화'속의 단호한 여성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은 최욱경이 유학생에서 교수로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미국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유학 후 현지에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했다. 1965년에는 '작은 돌들(Small Stones)'이라는 영문 시집을 출간, 문학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1970년대에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작품 창작과 강의를 병행했고, '앨리스의 고양이'를 비롯한 시 45편을 수록한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을 출간하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85년 작고할 때 까지는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산과 섬을 주제로 한 회화 작업 제작에 몰두했다.
1976~1977년에는 뉴멕시코에 위치한 로스웰 미술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이 경험은 최욱경의 작업 전반에 있어 주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에는 꽃과 산, 새와 동물을 연상케 하는 유기적 형태들이 뒤얽혀 있으며, 회전하면서 군무를 추거나 날아오르듯 부유하는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들이 주를 이룬다.
최욱경은 이 작품들을 제작하는 데 있어 영감을 준 요인으로 뉴멕시코의 풍경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언급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학예연구실 과장은 "결국 이 시기의 작업은 광활한 대지와 모래사막, 진귀한 야생동물들이 공존했던 뉴멕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더불어 앨리스와 기이한 동물들이 엮어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초현실적인 꿈속 풍경이 뒤섞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최욱경만의 독자적인 추상미술이 탄생한 곳은 한국과 미국, 현실과 꿈속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사이의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최욱경은 1980년대에 '상파울루 비엔날레'(1981), 뉴욕에서 '한국 현대 드로잉전'(1981), 교토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전'(1982), 파리의 '살롱 도톤'(1982) 등 해외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국제 전시에 다수 참여하면서 당대의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작고 이후에도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갤러리 등에서 작가를 추모하는 회고전(1987)이 개최된 바 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개최된 '여성 추상미술가들(Women in Abstraction)'(2021.5) 전시가 10월 22일부터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순회 전시되고 있다. 또한 모교인 미국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전시('1932년 이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에도 출품되는 등 해외에서도 시대를 앞섰던 추상표현주의 여성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욱경의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회고전은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화가 최욱경의 이력 뿐 아니라 시인이자 미술 교육자로 활동했던 그의 다양한 활동이 부각되어 국내외에서 최욱경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2022년 2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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