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이재용(53)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경영권 승계로 인한 문제와 무노조경영에서 벗어나 '뉴 삼성'의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어려움을 겪은 삼성이 앞으로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않는 새로운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이다.
명실상부한 국내 1위 기업이자 세계 11위(2021년 포브스 발표) 기업인 삼성전자를 대표로 하는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 시가총액으로는 700조원이 넘는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3세대 오너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손자이자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 부회장이다.
1968년 6월23일 서울, 고(故)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이에서 태어난 이 부회장은 경기초등학교와 청운중, 경복고 등을 거쳐 87학번으로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나왔다. 이후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1위 재벌가 장남치고는 의외로 대학생활도 수더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학적부에 아버지의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적었다거나 6월항쟁 당시 시위에 참가했다는 일화 등이 전해진다. 병역은 1991년 11월 허리디스크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후 1998년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세령(45) 현 대상홀딩스 부회장과 결혼했지만 2009년에 합의 이혼했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에는 1991년 12월 총무그룹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유학 생활을 거쳐 2001년 귀국해 경영기획팀 상무보와 상무, 전무,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 등을 거쳐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어 2012년 12월 삼성전자 부회장에 오른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2014년 5월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 뒤부터는 삼성그룹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제일모직)를 상장하고 삼성물산과 합병했으며 또 화학과 방위산업 부문을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각각 매각해 사업구조를 재편하기도 했다.
아울러 2015년에는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2017년 미국 전장기업인 하만 인수를 완료하는 등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사업 발굴에도 힘을 썼다.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도 호실적이 이어지는 등 경영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는 이 부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2017년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이후 약 1년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지난 1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또다시 구속되면서 207일간의 복역을 마치고 지난 8월 가석방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불거진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부당합병 의혹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 등의 재판등 사법리스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있었던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도 이 같은 과정에서 나왔다. 경영권 승계 문제나 무노조경영 등 과거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던 삼성의 문제점을 쇄신하고 새로운 삼성으로 변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보다 앞서 2017년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지난해 2월에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해 회사에 대한 준법감시 및 통제 기능도 강화했다.
또 2019년 차세대 디스플레이(QD) 13조1000억원 투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세계 최대 규모 생산공장 건설을 위한 2조원 투자 등 주력 사업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무노조경영 폐지 및 준법감시위 설치 외에도 11년간 이어져온 '반올림 백혈병 보상' 문제에 합의하고 불법파견 논란이 빚어졌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을 직고용하는 등 그동안의 남아있던 리스크도 해소해나갔다. 이 밖에 청년창업 지원, 사내벤처 육성, 청소년 교육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 가석방 이후에는 코로나19 미래질서 재편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고용 계획도 내놨다. 향후 3년간 투자 규모를 기존보다 33% 확대한 총 240조원으로 늘려 전략사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과감한 기업 M&A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글로벌 패권경쟁이 심화된 반도체 부문에서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확고히 하는 한편, 바이오 부문을 통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직접고용 규모도 3년간 4만명 수준으로 늘려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 부회장 본인도 가석방 뒤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달 김부겸 국무총리와 함께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 서울캠퍼스에서 간담회를 가짐으로써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삼성 측이 밝히는 이 부회장의 꿈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확고해진 준법 의지와 사회와의 동행, 건강한 산업 생태계 등이다.
또 2019년 11월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고 언급했듯이 사회와의 '동행'이 삼성의 경쟁력에 필수적이며 한국 경제의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내 산업 전반의 생태계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 1위의 글로벌 기업의 리더이자 상속자로서 이 부회장이 짊어진 짐은 무겁다. 경영에 참여한 이후로도 삼성을 이끌면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였던 부친의 그늘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이은 구속 등 각종 도전과제들을 겪어오는 동안 뚜렷한 자신만의 업적을 이룩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그간 이 부회장이 걸어온 과정이 삼성이 지닌 독특하고도 어두운 이면이 바뀌어나가는 변화였다고 본다면 지금은 '이재용의 삼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 부회장의 무게감과 심정, 삼성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지난해 말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최후진술에서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치열함이 삼성의 DNA여서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습니다. 삼성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국민 신뢰를 간과했습니다. 삼성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 국민에게 큰 빚을 졌고, 꼭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두 달 전 이건희 회장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그 분(추도사를 한 이건희 회장의 친구)은 선대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아 지금의 삼성을 키워놓은 이건희 회장의 예를 전 산업사(史)에서 접하지 못했다며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나음)'라는 말을 꺼내셨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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