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통신선 끊었던 김정은 돌연 복원
김정은, 남북관계 악화 책임 韓 전가
신범철 "대화 미끼로 韓 가스라이팅"
30일 북한 공개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경색돼있는 현 북남 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 초부터 관계 악화로 단절시켰던 북남 통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이변이 없는 한 다음달부터는 남북연락사무소 통신선, 군의 동·서해 통신선이 재개통될 전망이다.
통신선 복원은 약 2개월 만이다. 남북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친서 교환에 따라 지난 7월27일 통신선 복원을 선언했다. 그러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그 대가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요구했다. 한미훈련이 예정대로 열리자 북한은 8월10일 통신선 통화를 받지 않았다.
그랬던 북한은 문 대통령의 지난 21일 종전선언 제안을 계기로 태도를 바꿨다. 김여정 부부장은 25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을 언급하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고 29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통신선 복원을 선언했다.
다만 통신선 복원을 선언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 정부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자신들의 신형 무기 시험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 말라는 기존 북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무기 개발 사례를 언급하며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도 인정하라고 요구해왔다.
북한은 이를 통해 핵보유국임을 인정받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근거를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대북 제재의 완화 내지 폐기를 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 같은 계획에 한국이 협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지 말고 독자행보를 하라는 게 북한의 주문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한국을 현 대치 상황의 원인 제공자로 규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 정부를 조종하기 위해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은 대화를 미끼로 우리 정부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며 "첨단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해도 한국 정부는 계속 수위를 조절할 것이므로 이참에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한다는 입장을 총정리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문가들도 북한이 한국 정부를 본격적으로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이날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와 종전선언, 추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열망을 이용할 기회를 보고 있다"며 "북한은 한국이 이 세 가지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이를 악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리비어 전 차관보는 이어 "대화 재개 과정에서 한국이 북한을 위해 무엇을 주고 무엇을 할 준비가 돼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미국의 입장 변화를 설득할지 알아보려는 게 북한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이 방송에 "북한이 진심으로 양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기보다 다가오는 한국의 민주적 선거를 방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생화학방어 선임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군과 군사 장비의 철수가 동반되는 종전선언에 관심을 두는 것"이라며 "김씨 정권은 문 대통령이 임기 종료 전에 협상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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