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과도 정부 동안 57년 전 왕조 때 헌법 도입…왜?

기사등록 2021/09/29 17:33:09
[카불(아프가니스탄)=AP/뉴시스]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유엔(UN) 직원들이 탈레반의 위협에 노출됐다고 9일(현지시간) 더힐은 보도했다. 사진은 탈레반이 점령한 카불 공항에 탈레반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2021.09.09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현 과도 정부 기간 동안 57년 전 헌법을 임시 도입키로 했다.

29일 현지 매체 톨로뉴스 등에 따르면 탈레반 법무부 압둘 하킴 샤리 장관 대행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위배되는 조항을 제외하고는 아프간 자히르 샤 국왕 때 채택된 헌법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헌법이 적용되는 기간은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다.

탈레반 한 간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과도 정부 내각이 6개월 동안만 지속될 것이며 이후 공식 정부가 출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때까지 57년 전 과거의 헌법이라도 도입해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다잡고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히르 샤 왕은 1933년 부친인 나디르 샤 왕이 암살당하자마자 왕위에 올랐다. 이후 1973년 쿠데타로 왕위에서 물러났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됐다.

자히르 샤 왕의 헌법은 1964년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 11장, 128개 조항을 담고 있으며 이 헌법에서 왕은 의사 결정의 궁극적인 권위자로 통한다.

현 탈레반 정부가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를 최고지도자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그들이 왜 이 헌법을 도입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아쿤드자다가 맡은 최고지도자 역할은 이란 최고지도자(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처럼 직접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진 않지만 모든 정책이 그의 승인 없이는 집행되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갖는다. 대통령 인준과 군사령관 임명권을 갖고 있고 정부가 통과시키는 어떠한 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탈레반 스스로 원하는 권력을 헌법이라는 이름을 통해 보다 공고히 하게 된 셈이다. 여기에 탈레반 정부가 밝힌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위배되는 조항을 제외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면서 취하고 싶은 부분만 취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자히르 샤 헌법은 여성의 참정권도 허용하고 있는데 탈레반은 헌법에서 왕의 절대 권력 부분은 취하고, 여성의 정치 참여는 '샤리아 위배'를 이유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탈레반 측에서 자히르 샤 헌법 중 어떤 조항을 도입하고, 어떤 내용을 배제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탈레반은 지난달 중순 수도 카불을 점령한 뒤 여성의 교육보장 등 관련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그런데도 최근 카불대 총장은 여성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도, 대학 내에서 일할 수도 없다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측이 밝힌 정책에 반하는 내용임에도 탈레반 측은 대변인 발언으로만 부인할 뿐 실질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아프간 주민들의 불안과 탈레반을 향한 불신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mstal0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