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의료 인력 기준 마련 등 5개 과제 합의 안돼
"즉시 시행" vs "단계적 검토"…노정 입장차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보건의료노조와 정부가 12번째 실무교섭에서도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 인력 확충 방안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보건의료노조의 핵심 요구 대부분이 재정 투입을 필요로 해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는 전날 14시간 가까이 진행된 실무 교섭에서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8대 과제를 놓고 실무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당장 예산을 마련하기 어렵거나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일부 요구사항이 막판 쟁점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의료인력 기준 마련 ▲공공의료 확충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교대근무제 개선 및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도 확대 ▲야간간호료 등 지원 확대 등 5개 과제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가 코로나19 전담 병원의 의료 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중증 환자는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이 1:2, 경증은 6:1 등으로 정해 적정한 인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 기준의 시행 시점 등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인력의 생명안전수당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관계부처 협의 필요성 등에 따라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아직 공공병원이 지정되지 않은 32개 중진료권에 대한 세부 계획을 마련하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함께 국비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당장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직종별 적정 인력 기준을 마련하고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법제화하는 방안도 그동안 보건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부분이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제한하고 있는 미국(1:5)이나 일본(1:7)과 같은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2022년부터 우선 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모든 보건의료인력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실태조사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조는 교대근무제를 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하게 개선하는 방안으로 ▲동일패턴형 순환근무제도 ▲2주 연속 휴가 보장 ▲응급 결원 발생 대비 대체간호사 인원 운영 등의 내용이 포함된 개선 모델을 제시했다. 또 간호 인력의 현장 이탈을 막기 위해 교육전담간호사 제도를 민간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복지부는 시범 사업 추진을 검토할 수 있지만 재원 마련이 어려워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지역별로 차등 지원되고 있는 야간간호료 등을 전체로 확대하자는 노조의 요구도 정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관련돼 있는 사안은 당장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노조 측을 설득하고 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이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이견이 적고 의료 현장 수용성이 높은 과제들은 단기간에 추진이 가능하지만, 이해 당사자 등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은 노동계와의 협의만으로 결정하기 어렵다"며 "보건의료 체계에는 보건의료 종사자 뿐 아니라 보건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재정을 부담하는 국민 여러분과 의료기관 및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않은 타 의료인 등 다양한 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장관은 "보건의료노조의 고민과 어려움도 이해하지만 이런 정부의 입장도 다시 한번 이해해 주시길 당부드린다"며 "정부는 마지막까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을 막기 위해서는 5대 핵심 과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하고, 정부·여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촉구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복지부장관의 담화문은 복지부가 수차례 얘기해왔던대로 여전히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아쉽다"며 "협상이 진행됐던 지난 3개월 동안 '중장기 과제들이라 긴 호흡으로 논의하자'는 말을 되풀이한 것 말고 우리 외의 다른 이해당사자와 어떤 추가적인 논의들을 진전시켜 왔는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먼저 복지부 장관이 결단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의 권한 밖이라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방역 사령탑인 김부겸 국무총리가 범정부 차원의 역할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며 "여야 대표들께도 호소드린다. 보건의료노조와의 면담을 통해 우리 요구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고 한 만큼 예산과 입법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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