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60년전의 ‘빠니보틀’, 김찬삼의 세계여행

기사등록 2021/08/28 06:00:00
[서울=뉴시스]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2021년 올해의 유튜브 콘텐츠로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한 웹드라마 ‘좋좋소’를 꼽고 싶다. 중소기업의 생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2021년 1월6일 첫화가 업로드 됐는데, 순식간에 희대의 ‘띵작’(‘명작’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라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릴 정도였다. 7월10일 업로드 된 26화를 마지막회으로 드라마는 일단락되었다. 이 작품은 대기업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생’과 비견된다는 평을 얻었다.

‘좋좋소’는 유튜버 빠니보틀이 제작했다. 여행 유튜버로 유명한 그는 퇴사 후 400일 넘게 세계여행을 다니던 중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던 중 생각한 것이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한 웹드라마였다. 그는 자문을 얻기 위해 중소기업 전문 유튜버인 이과장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서로 의기투합해 웹드라마 ‘좋좋소’가 탄생하였다.

이 작품은 취준생 조충범이 정승네트워크에 입사하게 되면서 겪게 되면서 시작한다. 중소기업에서 있을 법한 사건과 미묘한 인간관계, 절대적인 악인도, 천사 같기만 한 선인도 없는 평범한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직장생활 이야기가 블랙코미디처럼 이어진다.

한동안 열심히 보던 웹드라마가 막을 내리자 아쉬운 마음에 ‘좋좋소’와 관련한 영상들을 찾아보게 됐다. 자연스럽게 ‘좋좋소’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의 세계여행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그의 세계여행은 동남아시아에서 시작해 인도를 거쳐 중동, 유럽, 러시아로 이어지는데, 그의 여행은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평범한 여행기가 아닌, 말 그대로 평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할 특별한 장소에서 보고 듣고 만난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빠니보틀의 세계여행 콘텐츠를 보다보니 배낭여행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에 세계여행을 다닌 여행가 김찬삼 선생이 떠올랐다. 그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8년부터 세계여행을 다녔다. 과장해 말한다면 카메라만 하나 달랑 들고 전 세계를 다녔고 그의 후원자는 한국에 있는 독자들뿐이었다. 그가 보내온 이야기는 신문과 잡지에 실렸는데 그렇게 벌어드린 적은 원고료 정도가 그가 기대할 수 있는 여비였다.

김찬삼의 여행기는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던 시절 가난한 우리에게 국경 밖의 세상을 꿈꾸게 만들어주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 태양처럼 빛나는 남미의 정렬적인 문화, 유럽과 미국의 풍요, 국경을 넘을 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모습이 그의 글 속에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졌다.

그가 쓴 글은 ‘세계일주 무전여행’(1962)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며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두 번째 세계여행 후 쓴 ‘끝없는 여로’ 역시 베스트셀러였다. 삼중당에서는 그의 세계여행기를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라는 전 10권의 양장판으로 발간했다. 무려 100만권이 팔린, 한 시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였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중학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삼중당에서 나온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통해서였다. 그때 그의 책을 읽으며 여행가로서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빠니보틀의 세계여행기를 감상하며 어려서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통해 세계여행을 꿈꿨을 때처럼 배낭을 지고 국경을 넘어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일상의 피로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는 코로나 이후 일상이 회복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국경이 조금씩 열리면서 여행 유튜버들이 다시 세계여행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빠니보틀 역시 여행을 재개했다. 미국서부에서 시작해 동부로 향하고 있는 그의 여정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