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TRPP "슈게이징 매력, 음악에 취할 용기"

기사등록 2021/08/10 13:39:06

혜성처럼 등장한 3인 밴드…정규 1집 'TRPP' 호평

[서울=뉴시스] TRPP 멤버들, 왼쪽부터 후루카와 유키오, 치-치 클리셰(Chi-Chi Cliché), 엘리펀트(elephant) 999. 2021.08.10. (사진 =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Terry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슈게이징의 완벽한 재림!'

혜성처럼 등장한 밴드 'TRPP'가 찬사를 받고 있다. 셀프 타이틀의 정규 1집은, 음악 이방인들이 폭발시킨 해방의 순간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슈게이징이라는, 어쩌면 낡은 장르를 재발견이 아닌 발굴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밴드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My bloody valentine)'으로 대변되는 슈게이징은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 1980년대 말 영국에서 출현했다.

밴드가 라이브 무대에서 꼼짝않고 악기만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신발(shoe)을 쳐다보는 것(gazing)'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로 기타 이펙트를 통한 지글거리는 사운드에 보컬이 뒤섞인 것이 특색이다. 노이즈 등 소음마저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종종 드림팝도 혼동돼 사용되기도 한다.

집 없이 유랑하며 떠돌이 인생을 살아온 중국계 프랑스인 멤버 치-치 클리셰(Chi-Chi Cliché)가 우연히 서울의 라멘집에서 일을 하다 운명적으로 일본인 록 마니아 후루카와 유키오(Furukawa Yukio)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이 시작됐다.

후루카와는 삼대째 이어온 라멘집 계승을 포기하고 한국이 좋아 무작정 서울 생활을 시작한 록 마니아. 치-치가 밴드에 합류하면서 꼴을 갖추고, 본명도 잊은 채 모든 현실을 가상현실이라 믿는 엘리펀트(elephant) 999가 가세하면서 밴드가 됐다. TRPP라는 팀 이름의 뜻은 다음 앨범에서, 공개하겠다는 이들을 최근 홍대 앞에서 만났다.

[서울=뉴시스] TRPP. 2021.08.10. (사진 =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제공) photo@newsis.com
치-치 클리셰(치)=저희에게 중요했던 건 '하고 싶은 것을 하자'였어요. 반응은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고, 이런 반응도 예상을 하지 못했죠. 신기해요.
 
엘리펀트 999(엘)=원래 슈게이징 장르로 노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치치와 후루카와가 제게 밴드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친구가 위로를 해주고, 교통정리까지 싹 끝내줬죠. 그 때 팀에 융화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루카와는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믿고 가는 거지!'

후루카와 유키오(후)=실수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제가 2인분을 감당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 1인분은 하겠다는 거죠.

엘=제 본래 성격은 걱정이 많아요. 좋게 말하면 꼼꼼하죠. 하지만 겉에서 볼 땐 답답함이 많죠. 그런데 치치와 후루카와를 만나면 해결이 됩니다. 저희 팀은 밸런스가 느껴져요. 각자 성격이 보완이돼 '동글동글' 구(球)처럼 됩니다. 모난 구석이 없어요.
[서울=뉴시스] TRPP. 2021.07.16.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photo@newsis.com

치=라멘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후루카와가 들어왔어요. 라멘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저와 음악 취향도 잘 맞고, 친절했죠.

엘=치치와 후루카와가 같이 있으니 이상해 보였어요. 그래서 더 관심이 갔죠. 강한 이끌림이 있었죠.

후=운명이 있다고 믿어요. 모든 일들은 정해져 있는 거예요. 전 어릴 때부터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라이드(Ride), 슬로다이브(Slowdive) 등 슈게이징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일본 밴드 중에서는 '오션 레인'이요.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했고 제 뼛속까지 록 음악으로 물 들어있었죠.

엘=후루카와와 공통 분모가 많았어요. 저를 지탱해준 음악들을 같이 들었더라고요. 치치가 들어온 음악들은 아닌데, 스펀지처럼 다 흡수해서 놀랐어요.

[서울=뉴시스] TRPP. 2021.08.10. (사진 =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제공) photo@newsis.com
치=슈게이징을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에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을 듣고, 좋다를 넘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로운 음악이었어요. 제 취향이었는데, 모르고 산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슈게이징의 매력은, 음악에 취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그 몰입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엘=파괴적이고 귀를 괴롭히는 소음들은 심미적이에요.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거든요. '좋은 자장가'로 들리기도 하죠. 귀에 들어와서 진짜 완벽하게 융화가 된다고 할까요? 시끄러워도 잠이 오는, 무아지경의 상황이죠. 앨범소개 글은 '컴 겟, 겟 미 아웃 나우(Come, Get me out now)', 단 한 줄이에요. 후루카와가 지은 건데, 저희 음악을 관통하는 메시지죠. 더 설명을 덧대지 않은 건, 저희를 음악에 다 때려 박아서 하얗게 불태웠고 그래서 남아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음악을 만들고 갈증도 해결됐어요. 엄청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신 듯했죠.

후=슈게이징은 동경을 해왔지만, 감히 제가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엘리펀트에 존경심과 감사를 표합니다. TRPP가 아니었으면 해볼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우리가 유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걸 해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엘=이번 작업으로, 음악에 대한 순수함이 생겼어요. 세상만사 걱정 없이 작업했어요. 노래를 만들 때도, 머리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었죠. 잡생각 없이 멜로디가 순수하게 배출됐죠. 저희 음악을 듣고 해방감이 묻어 있다는 걸 느끼셨다면, 저희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에요.

[서울=뉴시스] TRPP. 2021.08.10. (사진 = 매직스트로베리 사운드 제공) photo@newsis.com
치=한국에 들어와 친구가 없어서, 알바만 했어요. 사실 밴드라는 것이 친구이기도 하고 친구 이상의 교감도 하잖아요. 거기서 오는 짜릿함이 있죠. 저는 속함으로써 해방감을 느꼈어요.

엘=밴드는 모든 사회 생활을 다 섞어 놓은 거 같아요. 친구, 가족, 연인 등 무엇이든 될 수 있죠. 누구보다 가깝고, 누구보다 끔찍한 관계. 어떻게 보면 해괴망측한 집단 같죠. 그게 재밌어요. 제 성향상 혼자서는 절대로 발광할 수 없는데, 두 친구가 있어서 발광이 가능하죠. TRPP가 없었다면, 둘을 만나지 않았다면, 불행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 즐거움은 몰랐을 겁니다. 치치가 슈게이징의 즐거움을 함께 알아가서 좋아요.

후·엘·치=슈게이징 음악을 할 때 딱 하나의 신발을 신는다면요? 컨버스가 맞지 않을까요. 아니면 워커? 아니다. 뭘 신고 있어도 상관없어요. 슈게이징만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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