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4일에 집값 우려 처음 표명
전날 부동산 대국민 담화서 거듭 언급
"2년 뒤부터 매년 50만가구씩 공급돼"
"PIR 등 각종 객관적 지표도 전고점"
시장, "지금이 매수 타이밍" 등 조롱
전문가 "앞선 대책 실패…신뢰 저하"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또다시 "부동산 가격이 고점"이라는 경고 신호를 보냈다. 약 2개월 새 벌써 5번째다. 향후 집값이 떨어질 수 있으니 추격 매수하지 말라는 권고다.
현재 주택 공급이 충분하고, 객관적 지표를 따져볼 때 지금 가격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그 근거다.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어 주요국이 시중 유동성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이를 뒷받침한다.
29일 기재부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5월24일 확대 간부회의 모두 발언에서 집값 우려를 처음 표명했다. 당시 그는 "그동안 안정세였던 집값이 호가 중심으로 오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등 부동산 가격 급등 후 일정 부분 조정 과정을 거친 경험을 고려해 (구매를) 진중히 결정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6월3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 장관 회의에서는 "서울 아파트값이 실질 가격 기준으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조정을 받기 이전 수준인 과거 고점에 근접했다"고, 같은 달 30일 회의에서는 "서울 집값이 고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달 회의에서는 "여러 연구 기관에서 집값 고평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짚었다.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를 수는 없다. 그동안 향후 집값의 조정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말했지만, 이는 단순한 직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거 경험과 관련 지표가 보여준 바에 따른 것"이라는 28일 대국민 담화 발언까지 약 2개월 새 5번이나 거듭 강조한 것이다.
홍 부총리의 집값 고점 경고의 주된 근거는 공급량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이 8만3000가구, 전국 46만 가구라며 과거 10년 평균치(서울 7만3000가구·전국 46만9000가구) 대비 절대 모자라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최근 공급량을 적극적으로 늘린 결과 2023년 이후에는 매년 50만 가구 이상씩 공급돼 수급 불안은 조만간 잠잠해진다고 강조했다.
각종 지표 비교도 내놨다. 앞서 기재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실질 가격은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직전인 2008년 5월을 100으로 할 때 2013년 79.6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12월 98.8, 올해 5월 99.5까지 상승했다.
또 KB국민은행이 가구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 집계를 시작한 2008년 12월 서울의 평균 집값은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 기준 3분위(소득 상위 40~60%) 연 소득의 11.9배였지만, 올해 3월 17.8배까지 뛰었다.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의 중간 가격대 집을 사려면 연 소득을 17.8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리와 관련한 지적도 있었다. 홍남기 부총리는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운데 우리 금융 당국은 하반기 가계 부채 관리 강화를 시행하게 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테이퍼링(Tapering·양적 완화 정책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집값 고점 경고에도 시장에는 불신이 팽배하다. 홍남기 부총리의 브리핑이 끝난 뒤 국내 최대 부동산 커뮤니티 중 한 곳에서는 "내용이 방대하지만, 알맹이가 없다. 투자자 대부분은 '별 내용 없다'고 요약할 것이다. 여러 다주택자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정권 교체라는 희망을 품고 버티기를 시작했다"는 글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 "정부가 부동산 사지 말라고 할 때가 적기 매수 타이밍이다. 풀매수 신호다" "홍남기 부총리가 판 집 3배 올랐다" "패닉 바잉은커녕 스마트 바잉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부동산 상승장에 부담이 큰 듯하다" 등 담화 내용을 비꼬는 내용의 글·댓글이 다수 게재되기도 했다.
같은 날 치러진 청약 경쟁도 뜨거웠다. 브리핑 이후 1순위 청약 접수를 마감한 '세종자이더시티'에는 22만842명이 신청서를 냈다. 공급 가구 수는 1106가구뿐인데, 경쟁률만 199.7대 1을 기록했다. 전국에서 청약이 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한 단지에 2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몰린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민간 전문가는 정부의 정책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 이후 여러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 안정화에 번번이 실패해 국민 사이에서 '정책으로는 집값을 못 잡는다'는 학습 효과가 생겼다는 얘기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 연구원은 뉴시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8·2(2017년), 12·16(2019년), 6·17(2020년) 등 집값을 잡겠다며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책 효과가 없다는 것이 시장에서 증명됐다"면서 "수요 억제 중심 정책의 부작용이 상당히 컸고, 정책 신뢰도에 손상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윤 연구원은 이어 "아파트는 공산품과 달라 공급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현 정부 임기는 한정돼있으니 당장 수급 불안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장 참여자는 잘 알고 있다"면서 "가장 빠른 3기 신도시 입주도 2026년인 등 2023년부터 매년 50만호를 공급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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