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서·북간도 독립군단, 봉오동·청산리 전투서 대승
대패한 일본군, 만주 한인사회에 무자비한 학살 자행
일제 압력 받은 러시아도 저항하는 독립군 공격
1922년 '대한통의부' 등 군사조직 재편해 투쟁 지속
23일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독립운동기념관에 따르면 3.1운동이 있고 나서 만주 서·북간도에는 다수의 독립군단이 조직됐다.
이들은 항일무장투쟁을 이끌다가 1920년 6월과 10월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 승리는 만주망명 이후 약 10여 년간 만주 땅에서 일궈낸 독립운동가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만주 한인사회에 대해 무자비한 보복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제는 중국 마적을 매수해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도록 지시한 후 만주 독립군 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구실로 삼은 '훈춘사건'을 조작했다.
이어 만주 한인사회에 군대를 보내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일제는 이미 1920년 초부터 중국 동북지방 군벌과 연합해 유하현 삼원포 한족회 본회의 해산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5월에는 봉천·길림성 일대 한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 때부터 1921년 초까지 벌어진 일제의 만행으로 한족회 교육회위원 추산 권기일 선생과 일송 김동삼 선생의 아우인 김동만 삼광학교장 등이 순국했다.
이를 '간도참변' 또는 경신년인 1920년에 일어난 참변이라고 해 '경신참변'이라고 한다.
'조선민족운동연감'에는 당시 서로군정서 독판 이상룡 선생이 1920년 5월부터 1921년 2월 16일까지 서간도에서 일본군경에게 참변당한 명단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한 내용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권기일 선생과 김동만 선생 등 34인의 순국자 명단이 들어있다.
당시 일제로부터 압력을 받은 러시아 측은 독립군 무장해제를 요구하며 저항하는 독립군들을 공격했다.
독립군단들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어나는 등 많은 사상자를 낸 '자유시참변'이 발생했다.
당시 서로군정서 등 서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경북인들은 자유시로 이동하지 않았기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이처럼 두 차례 큰 희생을 치룬 한인사회와 독립군들은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에 힘을 기울였다.
1922년 봄 남만주 환인현에 모인 독립군 지도자들에 의해 '대한통군부'를 결성됐다.
같은 해 8월에는 남만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군단인 '대한통의부'로 확대하게 된다.
앞서 1910년 서간도 한인 자치기구였던 부민단 산하 병영 '백서농장' 장주로 활동했던 일송 김동삼 선생이 이 때 대한통의부 총장을 맡아 한인사회 안정을 도모했다.
군사조직도 재편성해 항일무장 투쟁을 이어갔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이처럼 독립군들은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광복의 꽃을 피우기 위해 무수한 고난의 길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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