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싸게 주먹구구' 철거 공정·장비 부실, 붕괴 참사까지

기사등록 2021/06/15 11:27:21

불법 하도급 '공사비 후려치기'…3.3㎡ 당 28만원→4만원

'무자격 초짜' 말단하청사, 이윤 남기려 저비용 공정 강행

장비 대여비 절감, 지상철거 대신 흙더미 위 굴삭기 작업

최소 안전장치 지지 '쇠줄'도 없이 건물 진입시 붕괴 추정

[광주=뉴시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사고와 관련, 붕괴 건축물이 무너져 도로로 쏟아지기 직전 철거 모습. 철거물 뒤편에 쌓아올린 건축잔재물 위에 굴삭기를 올려 일시 철거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2021.06.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가 불법 하도급 구조를 거치며 대폭 삭감된 공사비 안에서 최저 비용 철거를 강행하다가 발생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5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철거 공정에서 지정철거물 공사(석면 철거)는 다원이앤씨가 수주, 백솔에 재하청을 줬다.

신생 업체였던 백솔은 다른 업체로부터 석면 해체 면허를 빌려 철거 공정을 도맡았다.

백솔 대표인 A씨는 개인사업자였던 굴삭기 기사였으나 지난 2017년께 비계구조물해체공사 면허를 땄고 지난해에서야 업체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솔의 직접 고용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경륜·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철거 직종에서도 이른바 '초짜'에 해당한다.

더욱이 불법 하도급을 거치면서 철거 공사비가 3.3m²당 28만 원→10만 원→4만 원까지 크게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구조 안전에 대한 지식·경험이 부족한 무자격 영세 신생 업체가 최소 비용으로 철거를 하려다 보니 부실 공정이 불가피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말단 하청업체 백솔은 이윤을 남기고자 장비 임대료·안전 설비 설치비 등 비용을 극소화했다. 심지어 허가받은 계획서상 작업 절차도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무시했다.
[서울=뉴시스] 지난 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공사 중 붕괴된 건물이 지나가던 버스를 덮쳐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은 ▲부실한 건물 지지 ▲하중 등 구조 안전을 경시한 철거 방식 ▲과도한 살수에 따른 하중 증가 ▲굴삭기 건물 내 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긴 채 1~2층을 먼저 허물었고, 굴삭기 팔이 짧아 5층 천장에 닿지 않자 무리하게 건물 안까지 진입했다.

압쇄 방식 철거는 유압 설비를 장착한 굴삭기를 활용해 건물 높이에 따라 지상 또는 흙더미 위에서 철거할 수 있다. 다만 지상 작업시엔 '붐'(굴삭기 팔 연장 설비)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그러나 철거 계획서엔 무너진 건물은 '6층 또는 18m 이하'에 해당, 쌓아놓은 흙더미 위에 굴삭기를 올려도 충분히 해체할 수 있다고 적혔다.

굴삭기 팔에 연장 장착하는 장비 '붐'은 지역 대여업체에선 구할 수 없는 장비로, 현장에선 대체로 서울 지역 업체에서 하루 단위로 임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 철거에 흔히 쓰이는 '붐' 장착 50t급 굴삭기는 1대당 10억 원을 호가하며, '붐' 길이 기준으로 하루 임대료가 250만~500만 원(25m·50m)에 이른다. 서울~광주 대여 시, 왕복 운송비 등 부대 비용은 1000만 원에 달한다.

허가가 난 계획서 상 '붐'을 반드시 구비할 필요는 없다.

다만 A씨가 '굴착기 팔이 5층 천장까지 닿지 않았다. 건물 진입 순간 굴삭기를 떠받치고 있던 흙더미와 함께 앞으로 쏠렸다'고 경찰에 진술한 만큼, 애당초 30t급 굴삭기만으로는 철거가 무리였다는 방증이다.

[광주=뉴시스] 17명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철거 계획서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골조가 약해진 철거물과 흙더미를 결박, 지탱케하는 쇠줄(이른바 '와이어')도 참사 당일엔 없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은 전날 작업 도중 끊어진 쇠줄을 보강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붕괴 당일 먼지 발생량을 줄이고자 2배 가량 많은 살수가 이뤄져 물을 머금은 흙더미가 약해진 상태에서 굴삭기 하중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흘러내린 흙더미와 함께 앞으로 쏠린 굴착기가 어떤 형태로든 붕괴에 이르게 한 외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나오는 대목이다. 굴삭기가 앞으로 쏠리면서 지반에 충격을 줬거나 건축물에 직접 충돌했을 수도 있다.

현재 붕괴 요인은 ▲수직·수평 하중을 고려치 않은 흙더미 활용 하향식 압쇄 공법 ▲작업 절차 무시(후면·저층부터 압쇄) ▲쇠줄 미설치 등 건물 지탱 부실 ▲과도한 살수 ▲굴착기 무게 ▲흙더미 유실 등이 꼽힌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붕괴로 이어졌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다만 경찰은 붕괴 원인을 단정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요인 간 인과관계를 면밀히 따지고 있다.

특히 전문기관 감정과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등을 충분히 검토해 사고 원인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10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구역 철거물 붕괴·버스 매몰사고 현장에서 소방당국이 막바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발생한 이번 사고는 무너진 철거 건축물이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발생,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2021.06.10.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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