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 사상' 재건축 현장, 철거공사 불법 하도급 실체 드러내
'출혈 경쟁' 탓 다단계 하청 만연화…"입찰제 근본 개선 필요"
"철거 허가제 실효성 확보해야, 감리자 자격 요건 강화 시급"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재개발 철거물 붕괴 참사의 구조적 배경으로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과 무력화된 법 제도가 손꼽히고 있다.
다단계 하청을 거치면서 공사 기간·비용 최소화를 해야만 철거 시공사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고, 안전 관리·감독 규제를 실효성 있게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사업 4구역 내 붕괴 건물을 비롯한 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내 건축물 10채에 대한 철거 공사는 ▲현대산업개발(시행사) ▲한솔기업(시공사) ▲백솔기업으로 하청·재하청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한 뒤 백솔기업에 또다시 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철거를 도맡은 백솔기업은 석면 해체 면허를 다른 업체에서 빌려 공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면서 '이익금 빼먹기'가 벌어져, 철거 공사비는 3.3m²당 당초 28만 원였으나 최종 하청단계에선 4만 원까지 크게 줄었다.
이를 두고 깎인 공사비에서 이윤을 남기고자 무리하게 '막무가내 철거'를 강행했고, 참사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 광주·전남 건설지부 이준상 조직부장은 "건설업계는 법 테두리 안의 하도급제에서도 최저가 제시 업체가 수주하는 '출혈 경쟁'이 당연시 된다"며 "단계 별로 각 업체가 5~10% 정도 마진을 챙긴다. 후려친 공사비에서 이익을 남기려면 최종 하청사는 공정 완료 시점을 앞당겨 인건비·장비 임대료 등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몰상식하고 전근대적인 철거가 가능했던 것은 '빨리 끝내야 한다'에만 천착해 상식을 무시한 탓이다"며 "원청이 발주한 사업을 나눠 먹고자 급히 회사를 설립하고 불법 하청 이면 계약도 서슴치 않는다. 관행이 수십년 간 거의 모든 현장에서 이어지다 보니 법보다 무서운 지경이 됐다"고 비판했다.
고착화한 구조를 끊으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적정 공사비를 제시한 업체가 낙찰에 유리하도록 경쟁 입찰제 개선을 조언했다. 강제 수단·처벌 규정 마련 등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불법 부당 관행에 따른 '안전 경시' 공정에 제동을 걸고, 바로 잡아야 할 관리·감독 제도가 유명무실화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광주대학교 건축학부 송창영 교수는 "철거(해체) 허가에 앞서 제출받은 계획서 자체가 문제다. 26쪽 분량 계획서는 자세한 내용 없이 허술하다"며 "계획서 상, 유압식 장비 '집게발'을 장착한 굴삭기가 투입되는 압쇄 공법은 비용은 적지만 위험 부담이 크다. 계획대로 했더라도 건축물이 넘어졌을 가능성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붕괴 건물은 대형 크레인으로 소형 굴삭기를 층별로 옮겨가며 조금씩 해체했어야 했다. 추가 공사비용은 수 천만원에 불과하다. 사업 규모에 비하면 적은 비용을 아끼려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셈이다"고 했다.
철거 허가제의 허점을 지적하며 "서울 잠원동 붕괴 사고 이후 철거 공정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뀐 것은 괄목할 만하지만, 이번엔 계획서를 검토한 건축사가 제 역할을 못했다. 담당 공무원도 최종 검토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구조 역학적으로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철거 만큼은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려 허가를 심의·의결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미 관련 조례를 통해 철거심의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조례 제정과 함께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감리에 대해선 자격 요건 강화와 함께 적정 가격 계약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으로 정한 교육 시간만 이수하면 건축사가 철거 감리를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역할을 위해선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철거 감리 계약도 최저가제가 관행이다. 제대로 된 돈을 받지 못하는데 현장에 상주하며 꼼꼼히 살펴라 할 순 없다"고 했다.
일정 면적 이상의 철거 공정엔 현장 상주 감리를 법제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도 "철거 공정에선 흔히 민원이 많은 소음·분진 만을 고려해 최소한의 조치만 한다.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안전 관리다"며 "만연한 안전 불감증 탓에, 관련 인력·설비를 갖추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되짚었다.
한편, 경찰은 전문기관 감정 내용과 국토부 조사 결과 등을 두루 고려해 붕괴 원인을 규명할 방침이다. 참사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현대산업개발, 한솔·백솔기업 관계자와 감리자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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