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시험 전 답안지 등 받은 혐의
쌍둥이 자매, 각 징역 1년6월, 집유 3년
"검찰·법원 착시효과로 유죄 인정" 항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3부(부장판사 이관형·최병률·원정숙)는 9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H양 외 1명 항소심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쌍둥이 자매 측 변호인은 "각 과목별 의심스러운 흔적은 사실상 의심스러운 게 아니라 피고인들의 개인 특징"이라며 "이 흔적은 답안 유출의 근거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능성은 입증 안 된 의심일 뿐이고, 가능하다고 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의심이 반복되면 주는 착시효과가 있다. 검찰, 법원은 착시효과로 유죄를 인정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죄로 인정된 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변호인은 '깨알정답'에 대해 "깨알오답이거나 부실하고 메모대로 선택 안 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깨알정답은 쌍둥이 자매의 개인적 특징이고 부정행위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정정 전 정답'에 대해 변호인은 "정정 후에 정답과 맞춘 경우도 있고 부정행위 근거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부실한 풀이'에 대해서는 "필요한 풀이였고 부실하지 않다"고 변론했다.
아울러 '수기 메모장'에 대해서는 "그 자체가 컨닝페이퍼가 아닌 것이 명백하다"면서 "유출된 답을 보고 만든다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적는 게 타당하고, 시험을 친 후에 컨닝페이퍼를 보관하는 부정행위자가 얼마나 있나"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변호인은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토끼·오리' 그림을 제시했다. 이는 사물은 불변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토끼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리로 보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변호인은 "관점에 따라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며 "의심사슬로 누군가를 묶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이 사건 부정행위라는 흔적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흔적으로 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또 변호인은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속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주시기를'이라는 문구를 언급하며 변론을 마무리했다.
이어 "이런 내용이 드러나고 성적이 급하락했고,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은 매우 상이한 결과가 나왔다"면서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정황 사실들을 배제한 변호인의 변론은 일종의 침소봉대(針小棒大·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말함)"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 변호사를 비롯해 검사, 판사는 학창시절 나름 최고의 성적을 올린 수재들"이라며 "피고인들의 입장은 안타깝지만 검사 입장에서 변호인의 주장은 대단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쌍둥이 자매의 항소심 3차 공판은 다음달 23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이날 피고인신문이 진행된 뒤 항소심 변론이 종결될 예정이다.
쌍둥이 자매는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2017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교무부장이던 아버지 A씨로부터 시험지와 답안지를 시험 전 미리 받는 등 숙명여고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H양 등과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들이 1년 내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흔하게 발생하는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 이례적 사례에 비해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며 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편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 A씨는 지난 3월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지 및 답안지를 시험 전에 유출한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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