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불법촬영…반복되는 군내 성폭력
지난해 강간·성희롱 등 상담 건수 증가
"제도적 지침 이행하지 않아 문제인것"
"성폭력 사건 군사법원에서 벗어나야"
전문가들은 변함없는 군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건의 형사사법절차를 군의 테두리 바깥에서 밟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3일 군당국 등에 따르면 충남 서산 20전투비행단 소속 여성 공군 A중사는 선임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한 후 3개월이 흐른 지난달 22일 영내 관사에서 사망한 채로 남편에게 발견됐다. 장 중사는 회식 후 차량 뒷자리에서 A중사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전날 구속 수감됐다.
성추행 사례에 이어 불법촬영 제보도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지난달 초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서 여군을 상대로 불법 촬영을 저지른 남성 B하사가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전날 밝혔다. B하사는 여군들의 속옷과 신체를 불법촬영한 혐의로 군사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 내 성범죄는 근절은커녕 최근에도 오히려 증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2020 연례 보고서를 보면 센터가 2020년 지원한 성범죄 관련 전체 상담 건수는 전년에 비해 늘었다.
구체적으로 성폭력(강간·준강간·유사강간·의제강간) 상담의 경우 2019년 3건에서 2020년 16건으로 증가했으며, 성희롱 상담은 같은 기간 44건에서 55건으로 늘어났다. 디지털성범죄 상담은 9건에서 10건으로 늘었으며, 성추행 상담만이 52건에서 44건으로 감소했다.
군인권센터는 보고서에서 "성폭력 상담 접수율이 매년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엔 장난을 빙자한 가벼운 추행 대신 보다 직접적인 성폭력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이 접수됐다"고 했다.
현재 군내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를 보면 상담·신고 후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하고 개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등의 피해자 보호책이 마련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선 이런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성추행 피해를 당한 A중사가 사건 당일 상급자에게 신고했으나 상급자는 지휘관에게 보고하지 않았으며, A중사 가족의 항의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있다. 불법촬영 사건이 있었던 부대에선 사건 식별 1개월이 다 되어 갈 때 쯤 B하사를 피해자들과 마주치지 않을 만한 곳으로 보직 이동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관련 지침을 열심히 만들어 놓고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며 "2차 가해·묵인·방조 등의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도의 인식인 것"이라고 했다.
사건 당사자 외 군내 구성원들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하는 점도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가해자에게 온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을 '좋게 좋게' 해결하려는 2차 가해가 이뤄지는 것이다. A중사도 상급자에게 회유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내 성폭력 근절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군 내부 개혁을 넘어선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범죄를 포함한 일반범죄를 비(非)군사법원에서 다루자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김 사무국장은 "(군사기밀유출이나 방산비리 등 군사범죄가 아닌) 일반범죄를 군사법원에서 굳이 처리할 까닭이 없다"며 "뿌리 깊은 제식구 감싸기 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사건을 군 밖으로 꺼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전부터 논의됐던 불시방문조사권과 자료제출요구권을 갖춘 군인권보호관 제도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군인권보호관은 군 바깥에서 군인권과 관련된 사안을 조사하는 일종의 옴부즈만 제도다.
김 사무국장은 "군내 성범죄 처리 과정에서 2차 가해와 내부의 은폐·묵인·방조가 왜 문제인지 이번 사건을 통해 명백히 규명하고 이에 대해 군에서 학습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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