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자금줄 차단하려는 反군부 진영 압력 수용
토탈·셰브론, 가스 공급·자금 지급 중단 요구는 거부
"법·계약시 가치 공유하지 않는 기업에 문 열어주는 꼴"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프랑스 토탈과 미국 셰브론이 미얀마 국영 석유가스회사(MOGE)와 합작기업의 '현금 배당(cash distributions)'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얀마 군부의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반(反)군부 진영과 국제사회의 압력을 수용한 조치다.
다만 토탈은 자사가 최대 주주인 야다나 해상 가스전은 미얀마와 태국 전기공급을 위해 정상 가동한다고 했다. 핵심 사업인 가스전 운영은 계속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액인 합작사 현금 배당을 중단해 비판을 피해 가는 모양새다.
토탈은 26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게재한 성명에서 "지난 12일 열린 모타마 가스운송(MGCT) 주주총회에서 미얀마 정정 불안을 고려한 토탈과 세브론의 공동 제안으로 회사 주주들에 대한 현금 배당을 중단하기로 했다"며 "현금 배당 중단 결정은 지난달 1일부터 적용된다"고 했다.
MGCT는 토탈이 운영하는 야다나 해상 가스전에서 생산한 가스를 태국 국경까지 400㎞ 가량 송유관으로 수송하는 업체다. 토탈이 31.24, 셰브론이 28.26%, MOGE가 15%, 태국 국영 석유회사 PTT가 25.5%씩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
토탈은 "당사는 미얀마와 태국 현지인에게 필수적인 전기 공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관련법에 따라 가스 생산을 유지하면서 야다나 가스전의 책임 있는 운영자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당사는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인권 유린을 비난하고 유럽연합(EU), 미국의 제재를 포함해 관련 국제기구 또는 국가가 취하는 모든 결정을 이행할 것이라는 재확인한다"고 했다.
셰브론도 같은날 홈페이지에 토탈 지지 성명을 게재했다. 셰브론은 자회사 우노칼을 통해 미얀마에서 천연가스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셰브론은 "당사는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인권 유린을 규탄한다"며 "미얀마 인도주의적 위기는 미얀마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집단적 대응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상황이 허락되는 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다만 석유 공급과 MOGE 자금 지급 중단, 사업 철수 요구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셰브론은 "직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의료와 교육, 에너지 등 지역사회의 기본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당사와 같은 책임 있는 기업이 미얀마의 현재와 미래에 할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계약과 법률을 위반하는 어떠한 조치도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다른 회사가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사실상 미얀마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기업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토탈은 중단한 MGCT 현금 배당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문제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MGCT 지난해 총 배당금이 350만달러(약 39억원)라고 보도했다.
FT는 토탈의 발표에 세금 납부와 가스 공급 중단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토탈은 지난해 미얀마 당국에 1억7600만달러를 야미나 가스전 관련 세금과 재산권(production rights) 항목으로 지급했다.
토탈 최고 경영자(CEO)는 지난달 세금 납부를 보류할 경우 직원들이 기소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가스전 운영을 중단하면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과 태국 서부지역에 가스 공급이 중단된다고도 했다. 군부가 가스전을 인수할 경우 직원들이 강제 노동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도 했다.
MOGE는 1963년 미얀마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로 탄생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 생산, 운송 등 사업을 영위하며 미얀마 정부의 최대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합작사로는 프랑스 토탈, 미국 쉐브론, 태국 국영 PTT, 한국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있다. 쿠데타로 군부의 통제 하에 있다.
미얀마 반(反)군부 진영은 해외 합작사에 민주정부가 업무를 재개할 때까지 대금 지급과 수익금 분배를 중단하라고 요구해왔다. 국제 인권단체와 진보진영도 해외 합작사에 MOGE와 거래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토머스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특별 조사관은 MOGE에 대한 표적 제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MOGE에 대금 지급 중단을 요구해온 국제 인권단체 중 하나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토탈의 결정에 반색했다.
HRW 활동가인 존 시프턴은 "토탈의 조치는 첫단계"이라며 "미국 재무부가 미얀마 군사정부 최고기관인 국가행정위원회(SAC)를 제재함에 따라 해외 합작사들이 MOGE에 지급 중단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용이해졌다"고 했다.
이어 "전체 게임은 석유 공급을 계속하되 돈은 멈추는 것이다"며 "해외 합작사들은 주주와 시민사회, 미국, 그리도 다른 정부 관계자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미얀마 반군부단체 '저스티스 포 미얀마'도 환영하고 나섰다. 다만 MGTC 배당금은 미얀마 정부의 석유가스 판매수입 15억달러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단체 대변인은 "토탈과 셰브론이 MOGE가 미얀마 군부 통제 아래 있고 군사정부의 범죄를 위한 재정을 조달하고 있음을 마침내 인정했다"며 "국제 석유업체들도 가스 대금 지급에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이 대금이 군사정권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포스코인터내셔날도 미얀마 반군부진영인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로부터 지난 3월 군부와 사업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받은 바 있다.
CRPH는 당시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PTT 등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판매대금을 정권이 통제하는 은행 계좌에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비난한 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업무를 재개할 때까지 대금을 지불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미얀마 채굴산업 관련 기구인 MEITI에 따르면 페트로나스는 지난 2018년 2억800만달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1억9400만달러, PTT는 4100만달러 등을 미얀마 석유가스사업 대금으로 지급했다. 이들 기업은 송유관 이용로로 3억달러를 추가로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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