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 개인전...40년 예술 조망
탄광촌 노동자 작업복~머리카락 초상화까지 65점
"한국 리얼리즘 진면목·미술사적 가치 재조명"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광부 화가'로 불렸다. 198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그해 가을 강원도에 정착했다.
강원도 정선 함백과 강릉의 정동 탄광촌 신입적자(일용노동자)로 일했다. 온 몸은 닦아도 닦여지지 않는 검정이 진득했다.
3년간 쇠락한 폐광촌과 강원도의 풍경을 몸에 새긴 그는 태백, 삼척, 정선에서 일하는 탄광 노동자들 일상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황지 330', '목욕(씻을 수 없는)'(1983), '식사'(1985) 등을 발표하며 갱도, 선탄부의 광구와 마스크, 광부의 작업복, 때 묻은 전표 등으로 현실을 대변했다.
1980년대 중반 건강상의 이유로 광부 생활을 접었지만 그의 화폭은 여전히 탄광촌의 삶을 살았다.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광부가 되었고, 현실을 형상화하는 방편으로 실생활에서 탈각한 사물을 화면으로 끌어내는 데 몰두했다.
'광부화가'로 삶의 무게와 부조리를 피에 새긴 그는 리얼리즘 화가 황재형(69)이다.
그가 탄광촌의 일상과 삶을 리얼리즘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 65점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걸렸다.
황재형은 “막장(갱도의 막다른 곳)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곳이다. 막장은 태백뿐 아니라 서울에도 있다”며 민중미술을 지향한 작가는 "그 때 기억이 삶의 진실이자 연민"이라고 했다.
황재형은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그것의 회복을 꿈꾸는 메시지를 이번 전시에 담았다"고 밝혔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높이 2m가 넘는 그림 '황지 330'은 그가 현타(현실 자각타임 줄임말)를 느낀 작품이다. 낡고 헤진 작업복은 1980년 황지탄광에서 매몰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작업복이다.
작업복의 오른쪽 가슴께에 자수로 새겨진 ‘황지330’ 명찰과 왼쪽 포켓에 달린 신분카드를 통해 옷의 주인을 알 수 있지만 ‘330’이란 숫자는 이 노동자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익명의 존재임을 명확히 한다.
이 작품은 1982년 제5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고 ‘임술년’ 창립전에서도 선보여 주목받았다.
'임술년'은 황재형이 중앙대학교 회화과 복학생들과 함께 1982년에 결성한 단체로 형상성이 강한 회화를 선보이며 현실의 부조리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했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광부화가’의 정체성 안에서 황재형이 집적해온 예술적 성취를 조망한다.
‘광부와 화가(1980년대~)', '태백에서 동해로'(1990년대~)'실재의 얼굴(2010년대~)’등 총 3부로 선보인다.
1부에서는 인물 작품이, 2부에서는 풍경 작품이 주를 이루고, 3부는 인물과 풍경을 함께 선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전시공간을 통해 ‘사실성’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점진적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3부 ‘실재의 얼굴’ 전시장은 2010년대 황재형이 지역을 벗어나 초역사적 풍경과 보편적인 인물상을 그리고, 1980년대에 천착했던 주제를 머리카락을 이용해 새롭게 풀어내는 시기를 담고 있다.
화면에는 탄광촌의 광부와 주변 풍경이 재등장하는 한편 세월호나 국정농단 사건과 같은 동시대 이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은퇴한 광부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아버지의 자리'(2011~2013), 광부의 초상을 머리카락으로 새롭게 작업한 '드러난 얼굴'(2017), 흑연으로 역사의 시간성을 표현한 '알혼섬'(2016) 등이 공개됐다.
“광부화가 황재형이 그려낸 사실적 인물과 광활한 대자연, 초역사적 풍경은 오늘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 전시는 지난 40년 동안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현실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한국 리얼리즘의 진면목과 함께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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